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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낮추는 사회/이이춘 정치부장(데스크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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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낮추는 사회/이이춘 정치부장(데스크 진단)

입력
1994.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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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금 재난의 시대에 살고 있다. 시차를 두지 않고 집중타를 날리는  각종 사건 사고로 우리는 극도로 우울해져 있다. 지금처럼 화불단행(나쁜일은 겹쳐서 온다)이란 말을 실감해 본 적도 결코 없을 것이다. 성수대교 붕괴참사, 충주호 유람선화재, 사격훈련장의 총기난사와 각종 흉악한 사건등…. 정신을 곧추 세우기가 힘들 정도다.○그럴듯한 이유들

 우리가 지금 맞고 있는 재난은 모두가 그렇게 됨직한 연유를 갖고 있다고들 한다. 성수대교 붕괴참사는 관행화한 부실시공·관리의 탓이고 충주호 유람선 화재도 습성화한 안전의무 소홀 탓이며 총기난사나 각종 흉악사건들은 범죄를 저지른 개인의 성장배경과 사회환경에 그 원인을 두고 있다고 정부 책임자들은 말하고 있다. 또 인성과 도덕성을 도외시 하고 국가개발에만 매달려 온 지난 30여년에 걸친 누적된 부의 유산이 한꺼번에 터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내탓, 정부탓이 아니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사건 사고의 단면만을 쪼개어 보면 이 말들은 그럴 듯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설명이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재난의 총합」에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 또 그러한 정부의 설명에 솔깃해 할 국민이 과연 있을까.

○우리모두에 책임

 우리가 맞고 있는 재난의 근본이유는 우리 모두에게서 찾아야 할 것같다.우리는 그동안 책임이 따르는 사안에 대해서는 회피로 일관하는 버릇을 키워 왔다. 권한은 마음껏 휘두르면서 책임과 의무는 도외시해 왔다. 잘한 일은 내탓이지만 잘못한 일은 모두 네탓으로 돌리는데 익숙해져 있다. 문민정부의 개혁정책에 한결같이 박수로 호응하다가 개혁의 바람이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불어올 것같으면 완강하게 거부하는 자세를 서슴지 않았다. 성수대교 붕괴참사가 오직 정부의 교량관리 잘못에만 있다고 할수 있을까. 한강 위에 걸쳐 있는 다리 위로 자가운전자들이 혼자서 자가용을 몰고 다닐동안 우리도 그 다리들을 조금씩 허물고 있지 않느냐는 생각들을 해야만 했다. 집권층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부의 정책이 절대선이 될 수 없을 터인데도 정부는 전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성수대교 붕괴참사나 사병총기 난사사건 이후 정부가 밝힌 원인이나 수습책들이 민심과 동떨어진 것도 정부는 그래도 잘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나온 것이다. 착각이 아니라면 정부의 오만일 뿐이다. 주요 공직자를 인선하면서 엄밀한 검증없이 마치 주머니에서 꺼내듯 하여 오히려 말썽의 소지를 제공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야당 역시 다를 바 없다. 모든 잘못은 정부여당에 귀책할 뿐 야당은 책임소재를 따지고 실정을 비판하기만 하면 된다는 태도는 정치권의 공동책임 의식을 저버린 것이다.

 내탓은 없고 네탓만 있는 사회분위기는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오만한 마음가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오만한 마음은 남을 업신 여기고 비판을 적대하며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고약한 특성을 갖고 있다. 우리 국민이 대형 사고 사건이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등에 모두들 주장이나 의견을 갖는 전문가가 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개인의 오만한 마음가짐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의 문을 열자

 오만한 마음은 그 문을 열지 못한다. 설혹 열려 있더라도 문턱이 높아 다른 사람들이 들어갈 수가 없다. 지금 우리에게는 서로가 이 오만한 마음의 문을 낮추는 일이 시급하다. 마음을 낮추고 겸허해지자. 그래야만 서로의 눈높이를 같이 하면서 재난의 시대를 함께 풀어갈 수 있다. 「누구든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질 것이고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성서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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