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동창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30대 동창이 나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 『요즘 「당신이 그리워질때」라는 TV연속극 보세요? 거기 나오는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직장여성인데도 손자 봐주기를 거부하고, 자기생활을 갖겠다고 주장하는데, 장선배 칼럼에서 한번 따끔하게 때려주세요. 주부들이 시간을 내어 자원봉사도 하는데, 자기 손자봐주는 일에 왜 그리 인색하죠?』
『나는 그렇게 쓰고 싶지 않은데. 직업여성들을 위해 탁아시설을 늘리라고 주장해야지, 손자봐주기 힘들다는 할머니를 나무랄수는 없잖아요?』라고 내가 반대하자 40대·50대 동창들이 일제히 나를 지원했다.
『요즘 시어머니들이 이기적이라고 하지만, 아들·며느리가 이기적인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요. 우리세대만 해도 고부갈등이 있든 없든 부모봉양을 당연한 의무로 알았지만, 우리가 만일 아들·며느리에게 노년을 의탁한다면, 바늘 방석처럼 불안할거예요. 자식도 변하고, 부모도 변했다는걸 인정하고,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 해요』
『자원봉사하는 대신 손자를 봐주라고 아까 말했는데, 손자봐주기가 더 힘든 이유는 그것이 할머니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는 아들·며느리의 태도 때문일거예요. 아들·며느리의 마음에 감사가 없고, 어머니가 얼마나 힘든 일을 한다는 의식이 없으니, 어머니도 신이 안나는 거지요』
『나는 딸들이 직업을 갖고 있어서 가끔 외손자들을 봐주는데, 애들 봐주는 일처럼 힘든 일은 없어요. 저녁이 되면 목이 쉬고, 눈앞이 핑핑 돌아요.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 없는 여성은 아이 낳고 직장생활을 계속할 수 없다는데, 이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해 줘야해요. 할머니에게 책임지라는건 무리예요』
손자봐주기 싫어하는 할머니들을 「할머니 X세대」라고 부른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은적이 있는데, 그들은 어떤 세대인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50대초부터 할머니가 되기 시작하는 그 세대는 입시지옥속에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가정경제의 기반을 잡느라고 그야말로 뼛골이 빠지게 고생했던 세대다. 그들은 대개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았고, 잠재된 자기실현의 욕구도 강하다. 자녀들을 결혼시킨후 이제 자기자신을 위해 살아보겠다고 벼르고 있는데, 손자들을 덤썩 안긴다면 기쁨만 있을리 없다.
X세대 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려는 아들·며느리들은 그점을 이해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손자 봐주기보다 자원봉사가 낫다는 심리를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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