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배상책임 교묘한 회피 일관/귀국한인 제외 외교마찰 소지도 일본연립여당이 2일 승인한 피폭자원호법 정부원안은 지금까지 일정부의 보상대상에서 제외됐던 69년 이전 원폭희생자들에게도 특별장례급부금을 지급키로 규정, 전후처리문제에 있어서 다소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재일한국인 피폭자중 한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을 대상에서 제외시켜 한국내 원폭피해자와 관련단체들의 반발은 물론 외교적 마찰의 소지마저 남겨놓고 있다.
일본정부안은 또 전쟁에 대한 국가의 배상책임을 회피한 채 이를 보상으로 얼버무리는 차원이어서 일본 내에서도 불만의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 법안은 『위로금은 지급하되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방사선에 의한 희생에 대해 정부가 보상한다』는 것으로 귀결됐다. 즉 급부금은 사망자에 대한 조위금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생존자대책의 일환으로 유족에게 지급되는 장례비임을 강조, 국가책임을 교묘하게 비켜나간 것이다.
일본의 피폭자단체들은 벌써부터 『국가의 조의가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피폭자단체들은 그동안 일본정부에 대해 『전쟁이 국가의 책임임을 명백히 하고 사죄와 보상을 행하는 동시에 불전결의가 들어있는 국가보상법을 제정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 법안은 또 45년 원폭투하 직후부터 일본정부가 장례비 지급을 시작한 69년 이전에 사망한 원폭피해자의 유족중 피폭자와 결혼했다가 그후 유족이 된 경우에 대해서는 급부금지급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본후생성에 의하면 이 기간에 사망한 30만∼35만명의 원폭피해자 유족중에는 이같은 사례가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에는 재일한국인피해자들도 포함돼 있는 것은 물론이다.
무엇보다도 이 법안이 재일한국인피폭자중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을 보상대상에서 제외시킨 것은 최근들어 전후처리문제에 기울이고 있는 노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고 있는 듯한 일본의 진정한 의도를 의심케하고 있다. 일본정부가 전후처리문제를 이같은 방식으로 처리하는 한 일본이 전쟁에 대한 진정한 사죄보다는 국제사회에서 영향력 확대만을 꾀하고 있다는 주변국으로부터의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피폭자원호법이 이나마 타결된 배경에는 안보·자위대문제등의 기본정책을 전환함으로써 갑작스럽게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회당의 위기의식이 한 몫을 했다.
오랜 기간 반핵운동을 펴온 사회당은 야당시절 16차례나 법안을 제출했을 정도로 원호법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따라서 내년의 통일지방선거, 참의원 및 차기 총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사회당으로서는 사회당다움을 보여주어야 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대두됐던 것이다.
어쨌든 이 피폭자원호법안은 이번 국회회기중 통과가 확실시돼 일본정부가 보상을 시작한 69년 이전 원폭희생자들도 보상금을 지급받게 됐다. 일본 후생성은 피폭자수첩소지자의 70∼80%에 달하는 23만∼28만명이 장례급부금 지급대상이 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피폭자원호법은 관련단체들로부터의 비판과 함께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일반전쟁피해자들과의 형평성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여 이를 둘러싼 시비와 소송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도쿄=이창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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