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구소련의 마지막 반체제인사로 불린 것은 구소련체제와의 화해를 마지막까지 거부했기 때문이다. 구소련의 망명 반체제인사중 상당수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을 수용했으나 솔제니친만은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었다. ◆고르바초프를 사이비로 매도한 솔제니친은 공산체제가 완전히 붕괴된지 3년만인 지난 5월에야 20년간의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첫발을 딛고 40여일간 시베리아의 「수용소군도」현장을 감회깊게 돌아본 그는 모스크바자택에 칩거하면서 거의 두문불출했다. ◆귀국 5개월만에 러시아의회연단에 선 솔제니친은 러시아엔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했고 기회주의적인 변신과 혼란속에 소수독재가 자행되고 서민들은 여전히 고통과 신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러시아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솔제니친의 의회연설을 두고 억제할 수 없는 레지스탕스기질의 표출이라느니 정계진출을 위한 정지작업이라느니 하며 해석이 엇갈리고 있지만 옐친을 직접 거명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옐친을 크게 봐준 것이라는 의견들이라고 한다. 옐친이 주도한 러시아의 개혁은 20년만에 믿고 돌아온 망명작가조차도 울분을 참지 못할 만큼 만신창이다. ◆러시아 뿐만 아니라 공산체제를 무너뜨린 동유럽국가들의 개혁이 알찬 민주화의 결실을 맺지 못한채 매서운 꽃샘바람에 휘말려 동병상련상태다. 민중의 힘으로 쫓겨난 공산세력이 간판만을 바꾸고는 국민투표에 의해 다시 집권하는 역사의 역류현상마저 일고 있다.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 각국이 앓는 개혁몸살이 남의 일같지 않게 여겨지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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