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무리 충격불감증에 익숙해 있다 하더라도 성수대교 참사의 교훈만은 오래오래 간직해야 할 것같아 다시 얘기를 끄집어내고자 한다. 지난번 「지존파」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그들의 얼굴에서 인간의 악마적인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성수대교 붕괴사건이 알리는 경종은 인간의 문제라기보다 바로 한국인의 문제이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초라한 우리 자신의 총체적 모습을 보았다. 이 사건은 한국의 눈부신 고도성장 뒤에 뚫린 구멍이 도처에 있다는 것을 세계 만방에 알린 것이다.
우리나라는 서구가 3세기에 걸쳐 이룩한 근대화의 외형을 불과 30년만에 이루어냈다. 세계 여러 나라가 한국을 성공사례로 주목했고 기적은 기적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고 하여 한국의 성장은 높은 교육수준과 근면의 결실이라고 평가했다. 우리 자신도 한강의 기적에 때로는 놀라고 때로는 우쭐대기도 했다. 그런데 이 얼마나 부끄러운 외화내빈인가. 우리의 근대화와 경제성장은 피땀의 결정으로 칭송받을 만도 하지만 동시에 졸속의 산물임이 입증되었다. 졸속의 예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토목건축분야의 졸속은 모두가 익히 알고 있었다. 공기단축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부실, 눈가림, 땜질등으로 겉만 번지르르한 우리의 건축물이야말로 기적의 외화에 가려진 내빈의 상징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성수대교참사는 우리나라 근대화의 수준이요 4천만 한국인의 어두운 자화상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이번 사건이 전체적으로 보아 무리한 경제성장의 필연적 결과라 치더라도 어디까지나 인재인 이상 그 책임소재는 밝혀져야 마땅하다. 이 기회에 우리 사회에 내재하는 무책임의 구조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안된다. 국가대사나 대형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따로 노는 부처, 정책의 혼선은 보기가 딱할 정도이다. 책임은 서로 미루면서 해명때는 언제나 미사여구가 준비되어 있다. 우리 사회의 무책임의 구조야말로 한국병의 핵심이다.
사건발생 1시간30분 후에야 구조가 시작되었다니 보통문제가 아니다. 성수대교를 관리해 온 서울시 동부건설사업소는 지난 2월 정기점검에서 이음새가 심하게 부식된 사실을 확인하고도 9개월동안 사고방지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정기점검 자체도 하지 않은 채 「이상이 없다」고 허위보고한 사실이 밝혀졌다.
최근에 일어난 대형사고들이 다 그러하듯이 성수대교 붕괴사건을 책임질 사람도 따지고 보면 한두사람이 아니다. 계획, 설계, 입찰, 시공, 준공감리에 이르는 건축의 전 과정에 종사한 사람들이 다 책임을 져야겠지만 무엇보다 직접적 원인이 된 사후관리의 부실과 관련된 서울시의 관련직원과 시장이 중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32명의 귀한 생명을 앗아가고 전세계의 조소를 받음으로써 국제신용을 떨어뜨린 책임은 실로 막중하다.
현재 전국에 있는 교량은 1만1천6백60개인데 상당수는 당장이라도 헐어 버려야 할 정도로 노후한 것이라고 한다. 작년 10∼12월에 건설부가 안전점검을 통해 파악한 자료만 보더라도 1천2백여개를 개수해야 하고 그중 6백여개는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사건후 실시한 정밀안전진단에 의하면 한강대교 하나만도 상판 1백곳에 균열이 생겨 보수가 시급하다고 한다. 강(강)구조학회의 안전진단에 의하면 한강철교 4개도 균열, 볼트이탈, 변형등 7백여곳에 결함이 있다는 것이다.
평생을 일본에서 건축업에 종사해 오면서 조국에 건축문화의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 지난 3년간 서울에 건물을 짓고 있는 한 동포사업가는 한 마디로 「한국의 공사장은 범죄현장」이라고 못박았다. 그의 체험담은 그저 매사를 대강대강 빨리빨리 적당적당히 해치우려는 많은 한국인의 무책임한 행동에 일침을 준 것이다.
한강의 기적 뒤에 「죽음의 한강」이라는 엄청난 대가가 남아 있고 와우아파트참사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무책임의 구조속에 안주해 오다 또 다시 더 큰 사건을 저지르고 말았다. 반세기동안 거둔 고도성장의 부정적 유산에 대해 우리들 스스로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극적인 형태로 전세계에 적나라하게 폭로되어 버린 이상, 이제 아무 것도 숨길 것이 없다.
지금부터 우리가 할 일은 선진조국 얘기는 접어 두고 참다운 의미의 선진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전국에 꽉 들어찬 졸속과 부실의 구조물들을 성실하게 보수·관리하고 고도성장의 뒤에 가려져 있는 수많은 구조폭력의 사례들을 치밀하게 챙기는 일이다. 벌써 잊어 버렸을까 두렵기만 하다.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다리가 아니라 나라가 무너질 것이다. <고려대교수·한국평화연구원장>고려대교수·한국평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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