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삶의 방식들 생생하게 복원 이선의 장편 「우리가 쏘아올린 파이어니어호」(「문예중앙」가을호)를 읽으면서 문학이 역사보다 더 보편적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인 명제를 새삼 떠올린다. 문학도 일종의 기억의 양식이며 과거의 재현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역사 자체는 아니다. 그럼에도 문학, 특히 장편은 과거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역사를 살아있는 것으로 불러낸다. 문학을 통해 비로소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은 생생하게 교통한다.
역사도 결국 인간이 이루는 것이라면, 문학은 역사를 추상화하지 않고 살아있는 인간의 삶들로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이선의 소설에 재현된 것은 70년대초 대학사회를 둘러싼 인간들의 삶이다. 유신이 선포된지 1년이 지날 무렵 서울의 한 여자대학교가 중심무대가 된다. 작가는 긴급조치시대로 일컬어지는 이 시절의 암울한 사회상을 대학인들의 삶을 통해 그려낸다. 거기에는 보직교수들, 학생회 간부들, 기관원들, 대학출입기자, 학부형등 대학과 관련을 맺으며 살았던 사람들이 거의 등장한다. 이러한 대학성원들의 삶을 작가는 사실주의적 방법으로 다룬다. 어떻게 보면 시시콜콜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는 세부묘사에 대한 충실이 70년대의 삶을 생생하게 복원하는 데 기여한다.
이러한 사실주의적 방법의 고수와 더불어 작가는 당시의 삶의 방식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유지하려 한다. 그에게 있어 그 당시 인간들의 삶엔 절대적인 선이나 악은 없다. 가령 학생회 간부인 문숙은 곤궁한 집안형편 때문에 장학금을 바라고 학생회 일을 하고 있고, 학생과장 신교수는 학생들을 통제하지만 시종 이해와 고민을 함께 하려 하며, 심지어 남산 기관원인 문씨조차 자신의 생활을 가진 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더구나 이러한 각 등장인물의 삶에 대한 작가의 배려는 그들 자신의 시점에서 사건을 기술하게 함으로써 더 깊어진다.
학생과장 신교수, 학술부장 문숙, 총학생회장 동희뿐 아니라 문숙에게서 사치스런 학생이라고 비난받는 호정, 안기부원, 신문기자, 동희의 아버지등이 각 장의 화자가 되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과의 얽힘을 그려내는 방식으로, 작가는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복합적인 시선을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객관적 기술 태도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가 중립적인 것은 아니다. 작가는 당시의 정치적 억압이 인간들의 삶을 훼손하고 왜곡시켰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절망을 쏘아올리면 희망이 된다」는 동희의 역설도 한편으로는 절망이 지배하는 삶의 양상에 대한 통렬한 고발인 것이다.<문학평론가·덕성녀대교수>문학평론가·덕성녀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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