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다발불구 옛타성 안고쳐/근본대책 외면 “우발” 변명급급 지난달 31일의 사격장 총기난사사건은 서문석일병의 충동범행으로 결론이 났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비뚤어진 성격을 지닌 서일병이 상관에 대한 막연한 반발심으로 총질을 했다는 것이 육군의 조사 결과다. 구타등 사병간 가혹행위나 지휘관에 대한 하극상등 구조적 문제가 일으킨 사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은 군이 존재하는 한 운명적으로 부담해야 할 사고라고 볼 수도 있다. 인내심이 모자라는 젊은이들이 철저한 위계질서의 중압감속에서 인마살상용 무기를 다루다 보면 각종 사고는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더욱이 2년여 의무복무를 하는 사병들은 군인으로서 직업적 책임감이 절대 부족해 우발적 행동을 쉽게 저지를 수 있다. 사병은 군복무를 강제적 조직에 마지못해 승복하는 기간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대의 역량은 복잡한 여건과 상황속에서도 「폭력관리」를 얼마나 완벽하게 하느냐에 따라 평가된다. 폭력의 행사를 주로 하는 인간집단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은 군대만이 가진 고유한 기술인 것이다.
이유가 어떻든 서일병이 저지른 범행은 군이 폭력관리에 실패한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사건·사고가 군대의 필요악이라 해도 이를 원천적으로 막아야 하는 것은 군의 당연한 책무다. 어쩔 수 없이 사고가 터졌다는 것은 전문가 집단의 변명이 될 수 없다.
문제는 잘 굴러가던 군대가 요즘 들어 갑자기 사고뭉치로 전락했느냐는 것이다. 사상 초유의 장교·하사관 무장탈영사건이 일어난지 겨우 30여일 만에 이같은 사고가 터졌으니 「군=문제집단」이란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지난날 군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충격적 사고가 숱하게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63년 10월엔 대대장 일가를 몰살한 고재봉사건이 발생했다. 67년 9월 검문중 헌병이 장교를 사살했으며 68년 5월 경북 안동에서 술에 취한 사병이 극장에 수류탄을 던져 6명이 숨지고 52명이 다쳤다. 68년 9월 하사가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져 5명이 죽고 6명이 다친 사고가 일어났으며 69년 11월 일병이 휴가를 안보내 준다며 중대장을 칼빈으로 사살했다.
71년 1월 술 취한 사병이 길에서 7명 사살하고 이해 5월 하사가 중대장 집을 폭파시켜 4명 사망케 했다. 이어 8월엔 실미도에서 특수요원들이 탈출, 난동을 부려 모두 33명이 죽고 17명이 다쳤다. 73년 5월 일병이 고속버스를 빼앗아 7명 사살했으며 12월엔 일병이 서울 도심에서 연쇄 무장강도를 저질렀다. 74년 5월 사병이 서울 공항동에서 9명을 사살했으며 같은 달 명동에선 이등병이 철야 인질극을 벌였다.
80년 1월엔 사병 2명이 명동 로얄호텔에서 1백40여명을 인질로 잡고 대치를 했으며 84년 11월 하사 2명이 전북 옥구·군산일대에서 3명을 죽이고 대치극을 벌였다. 92년 탈영병이 혜화동등 서울 도심에서 난동을 부려 시민 2명이 죽었다.
이같은 대형사고는 그동안 쉴새 없이 일어났다. 특히 군사정권 시절 상당수 군내사고는 일방적으로 묻힐 수 밖에 없었다. 군은 자의적으로 사고에 따른 사회반응과 충격을 줄여 왔으며 이에 안주하는 나쁜 관행에 길들어져 왔던 것이다. 따라서 군은 스스로가 일으킨 잘못을 제대로 반성하고 개선하는 방도를 찾지 못했다. 요즘 일어나는 사고에 대해서도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지 않고 갑자기 터진 일 처럼 갈팡질팡 하는 것도 이때문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그런 시대를 책임져온 많은 군선배들이 최근 자신들의 잘못을 모두 잊고 일방적으로 군을 매도하는 것도 이같은 사태에 간접적 영향을 주는 행위이다.【손태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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