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대남방송 한자어 속출 눈길/호소력 높이고·한글전용에 한계 풀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대남방송 한자어 속출 눈길/호소력 높이고·한글전용에 한계 풀이

입력
1994.10.31 00:00
0 0

◎“남한정권 호미난방 처지” 비방/“불요불굴·부감” 김찬양 상투어북한이 계속하고 있는 대남 비방방송중 한자어 표현이 최근 급증하고 있어 우리측 관계자들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고 있다.

 북한 관영 중앙방송은 25일 논평프로에서 『남측의 정권이 「호미난방」의 처지에 빠져있다』고 주장했다. 호미난방은 「잡았던 범의 꼬리를 놓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위험한 일을 맞아 진퇴유곡일 경우를 말한다. 이 방송은 23일 우리측의 보도를 인용해가며 성수대교가 『무너졌다』고 논평 없이 보도 하더니 다음날 논평프로에서는 『다리의 「붕락」과 함께 정권도 붕락한 것』이라며 자못 어려운 한자어 표현을 썼다.

 비록 의무교육 과정에서 한자교육은 실시되고 있으나 북한 주민들은 일상생활에서 한자를 전혀 사용치 않고 있으며 지식도 적다. 귀순자들의 대부분은 처음 우리측 신문을 읽는데도 종종 어려움을 겪을 정도다. 따라서 북한측이 최근 선전보도에서 한자어 표현을 늘리고 있는 것은 우리측에 대한 호소력을 높이려는 의도 때문일 것이라는게 정부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밖에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찬양문구에도 종종 어려운 한자어가 등장한다. 투쟁정신을 묘사하는데 쓰는 불요불굴이라는 말은 상례화돼 있고, 김정일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고 있다는 뜻으로 『부감(부감)하신다』는 말도 종종 나온다. 김부자와 관련된 말에서 한자어를 써야 존경과 흠모의 정이 두터워지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인 듯하다.

 북한은 정부수립 다음해인 49년 한글전용을 선포하고 50년대 들어서는 모든 출판물에서 한자를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66년 김일성이 이른바 문화어를 정립하라는 교시를 내린뒤 국어사정위원회와 사회과학원 언어연구소 주도로 「말다듬기 사업」을 벌이면서 상당수의 한자어를 한글표현으로 바꾸어 왔다. 정치용어를 제외한 한자어는 한글 고유어로 대체하고 고유어가 없을 때는 풀어 쓴다는게 말다듬기 사업의 대원칙. 양계장을 닭공장이라는 말로 바꾼 것은 전형적인 예이다.

 서울대 고영근교수는 그러나 북한에서도 한자교육을 배제한 한글전용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자교육을 일찍부터 병행시켜 온 것으로 보고 있다. 50년대말 한자교과서가 편찬됐으며 62년 새옥편, 91년에 한자말 사전등이 편찬된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64년 두 차례의 교시를 통해 한자교육이 필요한 이유를 밝히고 이를 실시토록 지시했다. 첫째는 남측에서 한자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한자를 알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민족전래의 고전을 연구하기 위해 한자교육이 필요하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이유이고 한자교육을 배제한 한글교육에 실패했기 때문에 보완책으로 한자교육을 부활 시켰다는게 고교수의 분석이다. 이후 고등중학교 6년간 학년마다 「한문」이라는 과목이 개설돼 주당1시간씩 총 2백시간을 가르치고 있다.  학년별로 다른 한문교과서가 있으며  수업당 평균5개씩, 총1천20개의 한자를 교육한다.

 과목 이름은 한문이지만 교과서 내용은 한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국한문혼용체의 문장속에서 한자단어를 깨우치게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하리코프 종합대학 정종남교수에 의하면 고등중학교의 한문과목은 시험을 치지 않고 평상시 학습전형에 따라 평가하는 과목이다. 해마다 늘어나는 정치사상 과목의 시험때문에 학생들의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한문과목은 학생들이 제일 공부를 하지 않는 과목으로 돼 있으며 졸업후 한자에 대한 이해도 그만큼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유승우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