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월 무거운 짐으로 남아온 역사와 현실로서의 「12·12」가 드디어 사법적 판단을 받기에 이르렀다. 먼저 우리는 이번 판단의 내용이나 찬·반 차원을 떠나 실로 15년만에 우리의 해묵은 과제가 외견상으로라도 일단 정리됨을 보기에 이른 감회가 새롭다.
검찰의 판단 자체는 국민들간에 충분히 예상되어온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어서 별로 놀랄 내용은 없다하겠다. 12·12사태에 대해서는 이미 현정권 출범후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으로 『심판은 역사에 맡겨야한다』는 정치적 규정이 나와 있었다.
그래서 현실정치의 영향을 받게 마련인 검찰로서도 역시 법률적 당위론과 함께 정치적 현실론이라는 「두 얼굴」을 이번 판단에 함께 포함시켜 난처함에서 벗어나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런 이중적 잣대의 적용은 자칫 국민이나 쌍방 모두로 부터 반발을 살 수도 있겠지만 긍정적이고 불가피한 측면도 무시할 수가 없겠다. 비록 기소유예조치로 사법적 응징은 유보했다해도 사법적 판단자체는 「군사반란」으로 확실히 내려둔 것이다. 이런 사법적 판단은 바로 훗날로 미루기로 한 역사적 심판과도 맥이 통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따져서도 이번 사법조치의 또다른 성과는 「5공군부」의 군권장악과정을 소상히 밝혀낸 것이랄수도 있겠다. 실체적 진실의 핵심적 부분이 드디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인상을 충분히 주고 있는 것이다.
이번 조치가 새삼 일깨워 주는 건 우리의 모순에 빠진 현실이다. 하극상에 의한 그 반란이 성공해 「5공」이 있었고 직선제 「6공」탄생으로 국민적 심판까지 받았을 뿐 아니라 5·6공 세력과의 합당으로 오늘의 정권마저 있게됐다.
그래서 과거 군사정권과 오늘의 민주문민정권을 차별화는 해야겠는데 그런 기도가 지나쳤다간 정권자체의 발판을 부정하는 또다른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
성공한 쿠데타의 단죄문제는 이처럼 복잡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을수 없는 사법적 판단의 한계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현실적 한계와 미진함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법적 판단은 분명한 역사적 교훈과 무서운 경고를 동시에 남겨준다고 하겠다. 군사반란이나 쿠데타가 더이상 용납될 수가 없고, 비록 그 기도가 성공했다해도 두고 두고 사법적·역사적 심판을 함께 받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이 단순한 교훈과 경고를 얻기위해 그동안 무던히도 많은 우여곡절과 깊은 마음의 상처를 얻었다. 그래서 그 우여곡절의 끝을 보는 우리의 감회가 한편으론 허탈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