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드디어 「전함 포템킨」을 보았다. 그것도 이 땅, 서울의 한 영화관에서 누구의 눈치도 살피는 일 없이, 아주 공공연하게, 무려 70년전에 만들어진 영화를 이제서야 감상할 수 있었다. 1925년 12월 볼쇼이 극장에서 처음 상영된 영화를 1994년 10월 서울의 한 개봉관에서 보게된 것이다.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은 오늘날 영화의 바이블로서 영화를 공부하는 모든 이들의 교과서라는 포스터의 선전문구가 아니라도, 「전함 포템킨」의 화면은 영화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을 70년전에 이미 다 이루어 놓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지구의 한쪽에서 만들어진 「영화의 바이블」이라는 이 영화가 지구의 또 다른 한쪽인 남한에서 상영되기 위해 70년의 세월이 흘러가야만 했을까.
그 70년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세월이었는가? 그 속에 해방과 분단50년이 들어있고, 국가보안법이 들어있고, 그 속에 공연윤리위원회가 들어있다. 그리고 그속 저 안쪽에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서 「가시오」, 「서시오」, 「보시오」, 「보지 마시오」, 「눈 감으시오」, 「눈 뜨시오」라고 지휘하는, 바로 그런 세월의 한 귀퉁이에 앉아서 「전함 포템킨」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영화보다 나를 더욱 압도한다.
이런 문화적 암흑의 세월을 살아온 우리에게 영화인, 혹은 지식인, 문화인이라는 것은 또 얼마나 허망한 명칭인가.
「전함 포템킨」을 보았다고 우리 영화가 갑자기 비약적인 발전을 하는것도 아니고, 보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네 살림살이가 어떻게 되는것도 아니다. 다만 「전함 포템킨」의 상륙을 70년이나 막아온 지난 세월을, 그 70년 속의 내 삶을 회한과 연민과 분노로 되돌아 볼 뿐이다.
극장을 나오면서 간판을 보니 「전함 포템킨」옆에 「엠마뉴엘 부인」이 다리를 꼬고 앉아있다. 이땅에 도착하는데 불과 십몇년밖에 걸리지 않은 「엠마뉴엘 부인」이 70년이나 늦게 도착한 「전함 포템킨」을 요염하게 쳐다보고 있다.
그때 거대한 「전함 포템킨」이 「엠마뉴엘 부인」의 무릎사이로 침몰하는 장면을 나는 보고야 말았다.<오종우·극작가·치과의사>오종우·극작가·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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