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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밑의 치부」를 들춰내자/이종구 국제부장(데스크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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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밑의 치부」를 들춰내자/이종구 국제부장(데스크진단)

입력
1994.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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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으면서도 착잡한 두가지의 바깥소식에 접한다. 대만의 대북시장이 각의에 출석해 자신을 벌해달라고 자청하고 나섰다. 그가 처벌을 자청한 이유는 대북시에서 일어난 가라오케점 화재사고로 13명이 희생당했으니 시장인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두고 사법의 잣대로 책임소재를 가리고 있는 서울의 상황과는 영판 다르다. 그나마 사법적 책임소재도 한계가 있는것처럼 국민들에게 비쳐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에 살고있는 재미교포 2세 여고생이 LA타임스에 「서울은 썩었다」는 기고문을 냈다. 기고문의 내용은 한국은 초·중등 교육현장에서부터 돈거래의 관행이 있고 결국 성수대교 붕괴사고도 관례화된 뇌물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한국일보 27일자 「기자의 눈」은 우리를 매우 착잡하게 하는 바깥소식이었다.

 너무도 얄밉게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는것 같아 속상하기는 하지만 그 여학생의 지적은 맞는 말이다. 교육현장에 돈거래가 있다는것, 그리고 그런 관행이 좋지않은 일이라는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학교뿐인가. 사회 구석구석에 돈거래의 관행이 온존해 있다는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알면서 그냥 눈감아온 치부들의 하나였을 뿐이다. 말하자면 알면서도 까발리기 싫은 「이불밑의 치부」였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젠 용기있게 이불을 확 거두고 그렇고 그런 허구와 치부들을 하나하나 치워나가야 할때가 됐다. 왜냐하면 더이상의 대형참사를 막아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그런 일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알고 있는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치부는 요령주의의 만연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쁜 방법이 아니라면 요령이 있는것은 없는것보다 좋다. 그 요령으로 변변히 가진것 없으면서도 빠른 경제성장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요령주의는 많은 허구와 치부를 낳는다. 재미교포 여학생이 지적한 교육현장의 돈거래, 그 많은 토목공사 건설공사의 수주 및 하청의 부조리등이 요령주의의 산물이다. 또 있다. 공무원에게 생활급을 주지않고 공복정신에 충실하라는것도 국가적 요령주의의 하나일 터이다.

 어느 공익기관이 내논 TV광고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모두가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국가경쟁력을 높여 나가자는 취지의 광고이다. 한 공무원이 화면에 나와 싱가포르공무원을 자신의 경쟁상대자로 삼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과연 광고대로 싱가포르 공무원의 공복정신을 따라갈수 있을까. 그것은 모순이다. 그 봉급으로 집장만하고 자식 공부시키면서 먹고 살아갈수가 있을까. 월급모순을 바로 잡지않은채 깨끗한 공복정신으로만 살아가라는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우리 모두는 하늘에서 천사처럼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뚝 떨어진 사람들은 아니다. 적당히 요령을 피웠고 주변에서도 적당히 눈들을 감아주었다. 내 자식이 학교에서 귀여움을 받도록 돈도 갖다주기도 했고, 좋은 자리에 있을 때 뇌물인지도 모르면서 돈도 받아 쓰기도 했을 터이다. 그러나 우리가 피운 요령들은 결국 뾰족한 창끝이 되어 우리를 찔러오고 있다. 성수대교 참사가 그 하나의 징표일지도 모른다.

 선진국 문턱에 다 왔다고 우월감을 가져서도 안되지만 우리 사회가 허구와 치부로 가득찼다고 쓸데없이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선진국 사회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이 있고 치부가 있다. 공연히 이불밑의 치부를 드러낸다고 저마다 어깨에 힘을 넣고 난리법석을 떨 필요는 없다. 우선 조용하게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고 상식과 원칙에 맞게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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