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 나흘앞두고 실행 미묘한 파장/“중,국익따른 남북 등거리외교” 확인/정부,기정사실화… 별다른 대응없어 북한 중앙통신이 27일 군사정전위원회의 중국측 대표단이 곧 철수할 것이라고 보도함으로써 정전위에서의 중국의 역할은 결국 종결됐다. 따라서 형식적 명목이나마 겨우 유지하던 정전위 기능의 원상복구는 거의 불가능하게 됐다. 중국 이붕총리의 방한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서 북한은 또다시 중국을 움직이는데 성공한 것이다. 중국대표단의 정전위철수는 지난 9월1일 당가선 중외교부부부장이 송호경북한외교부부부장과의 회담에서 북한측의 요구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미 예견된 일이고 사실상 그 시기만이 문제였다.
그러나 중국이 국가정상급 지도자의 최초 방한을 나흘 앞두고 정전위대표단 철수의 실행을 결정한 것은 외교적으로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게 됐다. 중국은 이미 지난 9월 대표단의 철수를 발표했기 때문에 언제든지 철수가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으나 이번 철수실행에는 북한의 집요한 요구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은 이붕총리의 방한이 가져올 북한에 대한 「외교적 부담」을 의식, 북한의 편의를 봐주려했고 이것이 북한의 발표로 공식화됐다고 풀이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붕총리의 방한에도 불구, 중국의 남북한에 대한 등거리외교자세는 변화가 없다는 점과 오히려 정치적으로 중요한 시기에는 북한편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물론 중국의 국익추구에 따른 나름의 외교노선은 무턱대고 비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새로운 외교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도 중국측 대표단철수의 실행이 임박한데 대한 정부측 반응은 의외로 간단하다. 중국이 지난 9월 대표단의 철수를 결정했을 때 벌써 남북한을 저울질한 중국의 정치적 판단은 끝난 것이고 「외교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사안」이 됐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이미 중국대표단의 정전위철수를 내부적으로는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부가 당초 외교경로를 통해 중국당국에 심각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달했고 대표단철수를 철회해 줄 것을 요청했던 때와는 상당한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나아가 중국의 정전위철수를 고집한 북한의 의도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공세에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앞으로 북한과 미국은 물론 중국의 움직임을 사전에 견제하지 못할 경우 정부가 고수하고 있는 「남북당사자주의 원칙」이 또다시 왜곡되는 사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당국자들은 북·미회담의 최종타결로 우리 외교가 핵문제해결의 덫에서 놓여나 독자적인 역량을 쌓아나갈 기회가 제공됐다는 적극적인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정전위 중국대표단의 철수실행을 미리 예상하지도 못했고 따라서 적절한 대응기회를 스스로 놓쳐버린 것은 이러한 해석을 무색케 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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