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속 주인공과 두뇌싸움 긴장감/의학·법정등 영역넓어져 재미더해 『누가 범인일까? 나는 소설마다 독자들이 범죄의 올바른 해결에 필요한 모든 사실을 입수한 단계에서 독자들의 지혜에 도전해 왔습니다. 주어진 데이터로 엄정한 추리를 해나가면 진짜 범인의 정체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추리작가 엘러리 퀸이 독자들을 정통파 추리소설로 이끌기 위해 작품 서두에 썼던 글중 일부이다. 이 스산한 가을밤에 우리도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지적 게임을 즐겨 보자.
19세기 중반 에드거 앨런 포가 쓴 「모르그가의 살인」 이래 추리문학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문학장르의 하나가 됐다. 정통파 추리문학을 완성시킨 영국작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열 개의 인디언인형), 「오리엔트특급 살인사건」등 80여편은 1백3개 국어로 번역돼 20억부 이상이 팔렸으며 영화로도 많이 제작됐다.
기묘한 살인사건과 명탐정을 두 축으로 하는 탐정소설로 시작된 추리소설은 코넌 도일, 모리스 르블랑, 애거사 크리스티, 엘러리 퀸등에 의해 2차대전전까지 영국 미국 프랑스를 중심으로 추리문학의 황금기를 이루었다. 추리소설이라면 맨 먼저 생각나는 명탐정 셜록 홈스, 에르퀼 포와로, 제인 마플, 엘러리 퀸등은 이때 태어난 인물들이다.
전후에는 비정파(하드 보일드) 추리소설이 새롭게 등장했다. 여기에는 뛰어난 두뇌와 치밀한 관찰력을 갖춘 명탐정 대신 몸으로 부딪치며 범죄를 해결하는 주인공들이 활약한다. 폭력에 성이 가미되면서 추리소설은 대중문화 속으로 깊숙이 편입됐다. 레이먼드 챈들러, 존 딕슨 카, 르 카레등의 소설이 이런 유의 작품이다.
50, 60년대에는 국제적 냉전상황을 반영하듯 스파이소설이 풍미했다. 이언 플레밍의 「007위기일발」 존 르 카레의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등으로 대표되는 스파이소설은 탈냉전기로 접어들자 역할을 잃은 정보기관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다룬 유사작품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밖에 정치·역사문제나 부정과 비리를 축으로 사건을 풀어가는 사회파 추리소설이 있다. 일본작가 마쓰모토 세이조(송본청장)나 「제5열」 「여명의 눈동자」를 쓴 김성종씨등이 이런 부류의 작가다.
80년대 이후에는 의학 법학 유전공학등 전문지식을 소재로 한 작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로빈 쿡의 「코마」 「돌연변이」 「바이러스」등 의학미스터리, 존 그리샴의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의뢰인」 「펠리컨 브리프」등 법정소설, 마이클 크라이튼의 「쥐라기 공원」등 유전공학을 다룬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최근 영미에서는 변호사와 법정이 나오거나 의학범죄를 다룬 미스터리물이 소설부문 베스트셀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우리나라도 정도차는 있지만 예외가 아니다. 11월3일 방한하는 프랑스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타나토 노트」를 비롯한 번역 미스터리물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북악에서 부는 바람」 「영원한 제국」등 추리기법을 사용한 소설이 선풍적 인기를 얻고 있다.
한국추리작가협회 이상우회장(56)은 최근의 추리소설이 흥미와 함께 전문성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경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저급한 대중성에 영합해 사건의 논리적 연관성도 없이 공포분위기만 극대화하거나 성적인 묘사로 말초적 흥미를 유발하는 작품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추리전문잡지 「미스터리 매거진」 정태원주간(41)도 『유형별 대표작이나 우수작가 작품을 전문가들의 추천에 따라 골라 읽어야 추리소설의 재미를 제대로 맛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김범수기자】
◎추리문학 알려면/작가협·김성종,여름·겨울추리학교 운영/애독자모임 매달개최… 전문잡지 발행도
88년부터 매년 여름 한국추리작가협회가 열고 있는 「여름추리소설학교」는 독자들이 작가들과 함께 추리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7월 말에서 8월 초에 2박3일간 열리는 이 학교는 강좌, 작가와의 대화로 진행되며 추리백일장을 통해 창작소설을 선보이기도 한다. 올여름에는 덕유산 자연휴양림에서 작가 20여명등 1백여명이 참가했었다. 참가비 6만원.(02)719―3221
겨울에는 작가 김성종씨가 운영하는 추리문학관 주최로 「겨울추리여행」 행사가 1월 중순께 열린다. 여름추리학교처럼 2박3일간 작가와 범죄수사 관계자들이 추리소설과 범죄사건을 강의하며 독자들과 간담회를 갖는다. 지리산 쇠점터산장에서 열린 올해 2회 추리여행에는 50여명이 참가했다. 참가비 5만∼6만원. (051)743―0480
애독자들이 만든 「미스터리클럽」 모임도 있다. 작가·평론가지망생들과 독자들이 매달 한차례씩 모여 추리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자리로 비회원에게도 개방돼 있다. 현재 50여명이 가입해 있으며 월회비는 5천원. (02)597―5220
최신정보를 얻거나 전문지식을 넓히려면 잡지를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국내 추리소설 잡지로는 월간 「미스터리 매거진」이 유일하다. 88년 창간됐다가 10호를 내고 종간했던 계간 「추리문학」이 속간호를 낼 준비를 하고 있고 미스터리클럽도 부정기로 잡지를 내기 위해 추진중이다.【이재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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