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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문화시대의 교훈/정일화(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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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문화시대의 교훈/정일화(메아리)

입력
1994.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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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구 석조건축은 우선 웅장하다. 로마의 베드로성당, 영국의 버킹엄궁전, 터키의 하기야성전, 미국의 국회의사당… 어느것 하나 목조건축에 눈이 익은 한국인의 눈을 휘둥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없다. 도시 목조건축과는 비교가 안된다. 로마의 거대한 석조문화는  이탈리아 북부 마사―카라라지방의 대리석 산지 때문에 가능했고, 찬란한 고대 희랍건축도 아테네 펜탈리산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리석 보고」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미국의 석조문화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메인주의 풍부한 화강암생산지이다.

 한국이 서양의 석조문화와 경쟁할 수 있게 된것은 시멘트공업이 손에 잡히면서부터다. 지금 19개나 되는 한강 다리를 시멘트 아닌 나무나 돌로 놓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성수대교 붕괴는 4천년 목조문화가 석조시멘트문화로 일시에 바뀌면서 오는 기록할만한 사고이다. 이 대형 사고는 대형 사고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사고 뒤에는 서구 석조문화를 시멘트라는 도구로 급격히 따라잡으려 했고 또 성공도 한 한국인의 의지가 배어있는 것임을 간과할 수 없다. 무너진 성수대교를 철거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다. 그러나 이를 철거하기 보다는  구조물을 그대로 두면서 지난 세대동안 한국인이 서구문화를 따라잡기 위해  겪은 많은 시행착오의 살아있는 교과서로 남겨두는 것이 더 가치있는 일이 될것이다.

 나라에 따라서는 자기네들의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기 위해 옛 석조건축물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곳도 많지만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세워 두고 있는 건축물도 적지 않게 있다. 베를린시 한복판의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나 일본 히로시마에 있는 원폭돔 건물같은 것이 그 예이다. 모두 전쟁참화를 잊지 않기 위해 파괴되고 찢어진 모습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꼭 건축물만 그런 것이 아니고 배나 항공기같은 철제물도 더러 공개된 역사교재로 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선창가에는 1904년 노일전쟁때 일본해군에게 완전히 녹았던 발트함대의 기함 아보라(AVORA)함을 말끔히 수리해 관광코스의 하나에 넣고 있다.

 영동대교를 지나면  한강 수면 위로  그림같이 떠있으면서 중간에 이가 빠져 있는 무너진 성수대교가 바로 눈앞에 들어온다. 그 모습이야 말로 20세기말 한국사회의 성공과 실패를 말해주는 가장 확실한 역사서가 될것이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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