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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본정신과 「신한국」/박명진(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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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본정신과 「신한국」/박명진(한국논단)

입력
1994.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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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향수는 수출용보다는 내수용이 훨씬 더 품질이 좋다는 얘기를 흔히 듣는다. 의상등의 패션제품들도 수출용은 국내용보다는 급수가 낮은 것이라고 한다. 향수고 패션제품이고 간에 그 질이나 수준의 비교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쉬운 일이 아니므로 이런 풍문을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프랑스인들 자신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외국인들이 자신들처럼 세련된 취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독일, 미국, 영국등 소위 자타가 인정하는 선진국들의 경우 내수용 공산품, 농산품들의 품질기준이 수출용보다 까다롭다는 것은 굳이 풍문이 아닌 확인 가능한 사실이다. 이런 경우를 보면서 선진의식이라는 것은 바로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자긍심과 자존심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정반대이다. 모든 좋은 것, 쓸만한 기술은 우선적으로 「수출용」에 동원되어 왔다. 지천은 아니었어도 찾으면 그리 비싸지 않게 구할 수는 있었던 송이버섯을 이 땅에서 도통 구할 수 없고, 맛좋은 일등품 김대신 잘 찢어지고 청태가 섞인 김으로 만족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생산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생산되는 족족 일본에 수출해서 외화를 벌어와야 했기 때문이다. 공산품을 만들어 수출하게 되었을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모자라는 기술과 솜씨를 그나마 수출상품 만드는데 총동원해서 쓸만한 것은 당연히 수출하고 우리는 조악한 상품을 비싸게 사서 썼다. 그결과 「수출품」이란 우수한 품질의 상징처럼 되어서 오늘날도 보세품 찌꺼기라도 내수상품보다는 우수한 것으로 인식이 되어 있다. 국산 자동차도 수출용이 더 품질이 좋고 값도 싸기에 외국에 가서 한국자동차를 비싼 운임물고 사가지고 오는 웃지 못할 일도 생겼다.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의 상황과는 정반대이다.

 성수대교사건은 마치도 「좋은 것은 모조리 수출하기」의 극단적인 결과처럼 보인다. 좋은 토목기술과 정직한 공사방식은 외국을 가꾸어주는데 쓰고 찌꺼기기술과 불성실한 공사와 관리로 우리는 무너지는 다리에서 목숨을 잃어가야만 하는 지경이 되었다. 이런 상황은 어떤 경제논리로도, 어떤 대외수지의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외화건 무슨 돈이건 벌고자 하는 이유는 우리 땅에서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것이지 돈벌이 자체가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수출과 외화벌이가 절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논리를 강조하며 하도 오랜 세월을 살다보니 정책담당자들은 수출을 우리의 생존의 수단이 아니라 생존의 목적 그 자체로 착각하는 지경에 이른 것은 아닌가?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참변에 관련책임자들은 예산, 교통량의 폭증, 제도상의 허점등등의 기능적인 이유들을 충분히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국가경영정책이나 기업운영정책 바탕에 알게 모르게 깔려 있는 「한국사람경시」의 태도이다. 다리를 세우는 사람이나 관리하는 공무원이나 배를 짓고 그것을 관리 운영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감독하고 있는 당국이나 한결같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홀대를 해도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는 듯하다.

 문민정부 탄생은 비로소 우리도 사람의 격을 갖추고 있음을 스스로 선언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었다. 힘에 꼼짝 못하고 배만 부르면 되는 동물과 유사한 격의 국민이 아님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새로 집권한 정부도 이전과 별 차이 없이 국민을 함부로 다루기는 마찬가지라는 피해의식이 생기고 있다. 군사문화와 그것이 내포하고 있었던 인본정신의 결여가 회복되어야 할 필요성이 절실했기에 문민정부의 「신한국」이념은 그 회복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경제적 사정이 약간 나아졌다고 한국사람들이 보이는 가당치 않은 허세의 바탕에 실상 두텁게 깔려 있는 3등국민으로서의 자조를 내실있는 자존심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해줄 것을 바라기도 했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국민들 스스로 그런 의식을 갖게 되어야 하나 그것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에 우선 국가정책의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것은 달라진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구악과 구태의 누적이 가져온 일련의 재앙이라고 강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뢰가 곳곳에 묻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집권한 것도 아닌 바에야 그것을 재빠르게 제거하지 못하고서 이전의 탓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예산문제나 제도 이전의 것이라고 생각된다. 전반적인 국가정책 자체가 「한국인의 사람대접」의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제도정비나 정책의 우선순위 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서울대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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