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담화 채 끝나기도 전에…”/실질·구체적 대책마련 부심 청와대는 25일 전날의 충주호 유람선 화재사건으로 침통하다 못해 할 말을 잊은 표정이었다. 관계자들 대부분이 충격 속에 말문이 막힌 듯했다. 김영삼대통령은 이날 상오 박관용비서실장과 이의근행정수석으로부터 사건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받았으나 눈을 감은 채 듣고만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실장의 본관보고가 길어지면서 박실장 주재의 수석회의는 취소됐고 나중에 박실장과 이원종정무 이행정 김영수민정 주돈식공보수석등의 구수회의로 대체됐다. 그러나 별다른 발표는 없었다. 청와대는 성수대교 붕괴참사의 충격을 김대통령의 대국민사과 담화발표로 딛고 심기일전해 민심수습과 국정쇄신에 박차를 가한다는 생각이었으나 바로 대통령담화가 발표되기 3시간여 전에 발생한 유람선 화재사건으로 일순 주저앉는 분위기다.
김대통령의 사과담화는 국민들 관심의 뒷전으로 밀린 채 언제 있었느냐는 식이 돼버렸다. 김대통령이 담화에서 『책임을 통감하며 부덕함을 뼈저리게 느낀다』고 모든 책임을 떠맡고 나섰으나 참모들은 오히려 더 참담한 심정과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됐다. 충주호 유람선 화재사건이 지난 해 서해 훼리호 전복참사와 드러난 문제점들이 비슷한 데다 당시 김대통령이 직접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었기에 참모들은 뭐라 할 말이 없게 된 것이다.
김대통령은 전날 담화에서 『성수대교 붕괴와 같은 사고와 사건이 터져 나올 수 있는 위험은 아직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불안과 위험성을 예고했다. 우리가 개발경제과정에서 질보다는 양, 실질보다는 전시 위주로 달려 온 결과가 사건과 사고로 이어질 개연성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성수대교 붕괴사고나 충주호 유람선 화재사건은 모두 그같은 부의 유산말고도 김대통령이 담화에서 지적한대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사건』의 성격도 크다는 점에서 정부의 국가관리능력에 심각한 회의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청와대관계자들은 우려하는 인상이다.
누적된 사회적 병리현상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장기적인 치유책이 마련되어야 하지만 그에 앞서 지금까지 진행돼 온 개혁의 방향과 성과에 대해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대두되고 있다. 청와대는 책임도 책임이지만 화불단행(불행은 혼자 오지 않고 함께 온다)이란 말대로 사건 사고가 잇달고 있는 데 대해서도 아연해 하고 있다. 사건 사고의 진단과 처방이 사회적 충격과 비난, 개탄분위기에 휩쓸려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스스로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유람선 화재사건만 해도 내수면을 운항하는 유도선(유람선 및 도선)의 감독관청인 군(내무부)의 감독사항은 정원초과, 구명조끼 비치유무, 주류 및 인화물질반입금지등이고 엔진등 선체점검은 항만청소관이다. 따라서 해당군수에게 행정책임을 묻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는 소리도 있지만 분위기에 눌려 그런 말을 할 처지도 못되는 상황이다. 청와대는 김대통령이 성수대교 붕괴사고와 관련해 사후수습이 우선이라는 생각에서 야당이 국정쇄신책으로 요구하는 내각총사퇴를 거부한 마당에 정치적으로 달리 정국돌파 카드를 고려할 여지도 없는 상황이다. 한 관계자는 어렵게 이런 말을 했다. 『충격요법은 논리상 쓸 수도 없게 됐고 써서도 안된다. 김대통령이 국민에게 호소하고 나선대로 부의 유산일망정 관리를 잘못한 정부의 잘못도 통감하면서 차근차근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 나갈 때다』【최규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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