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건 서울이건 동일제품공급” 철학/신입사원 외국근무 10년이후 본국 배치 질렛사가 면도기 경쟁을 통해 체득한 교훈은 하나의 제품이 히트를 쳤다고 거기에 매달리지 않고 다음 내놓을 제품을 개발한다는 것이다. 질렛의 연구소에는 현재 개발중인 면도기가 20종류는 된다. 앨 제이언회장은 『서기 2000년까지도 시판되지 않을 제품개발계획에 연간 1백만달러를 들인다』며 『그런 장기 계획만이 기술제약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질렛사의 기업적 성공의 비결을 묻는 취재기자에게 홍보담당자인 매트 밀러씨는 94년 4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제이언회장이 밝힌 연설문에 줄을 그어 내밀었다. 바로 다국적기업으로서 질렛의 성장이 해외시장확대에 힙입고 있다는 구절이었다. 매출액 기준으로 93년도 질렛의 해외영업 점유율은 66%였다.
질렛의 세계시장 전략은 나름대로 독특한 것이다. 해외직접투자이든 합작투자이든 또는 단순한 판매회사이든 면도기영업을 본격적인 궤도에 올려놓은 후 그 유통채널을 통해 다른 질렛 제품을 진출시키는 것이다. 질렛은 창업이후 다른 기업을 합병하면서 성장했지만 기업철학은 면도기를 제일의 주력제품으로 고수한다는 것이다.
질렛사는 뉴욕에서건 서울에서건 동일한 상품을 공급한다는 해외마케팅전략을 쓰고 있다. 특정 지역의 특성에 맞춰 상품을 개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제이언회장은 최근 「포브스」지와의 인터뷰에서 『전세계에 수프를 판다고 글로벌기업이 되는 것이 아니라 뉴욕에서와 똑같은 수프를 파리에서도 팔아야 진정한 글로벌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질렛의 이같은 글로벌 전략은 인력관리나 광고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매트 밀러씨는 『질렛의 광고는 세계 어디를 가든 사용하는 언어만 다를 뿐 본사에서 만든 광고내용을 그대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밀러씨는 이같이 전세계를 동일한 광고로 묶는 것은 경비절감에도 크게 기여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또 인력관리에 대해 『한국에서 질렛 사원을 뽑으면 그 사원을 보스턴본사로 불러들여 여러 부서에서 18개월간 순환근무시킨 후 바로 한국으로 보내지 않고 소련이나 남미의 현지법인으로 보내 근무를 시킨후 10년후에 한국영업에 참여케 한다』고 설명했다. 질렛의 인력관리는 본사인 미국에서나 제3국에서나 궁극적으로 자기 나라에서와 똑같은 방법으로 영업을 하도록 일체화하는 것이다.
제이언회장은 올해 주주총회에서 글로벌전략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하면서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한가지, 즉 세상은 꾸준히 변한다는 사실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시장에서 선두가 되기를 원한다면 국내시장에서 앞설 수 있는 것만으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보스턴의 질렛 본사를 둘러보면 사무실마다 콧수염을 기른 창업자 킹 질렛의 초상이 걸려 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경쟁은 악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던 공상적 사회주의자였다. 그가 설립한 질렛사가 90년동안 경쟁을 통해 세계면도기 시장을 지배하는 승자가 됐다는 사실은 역사적 아이러니지만 또한 지난 1세기에 걸쳐 기업환경이 얼마나 변했는가를 말해준다. 질렛 공장이 있는 보스턴 주변일대에는 수십년전 번창하던 수많은 공장건물들이 폐허가 된 채 버려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적자생존의 현장을 생생히 보여주는 광경이다.【보스턴=김수종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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