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해 전 일본의 유력지가 색다른 여론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설문의 핵심은 「2차대전에서 패전했던 일본이 40여년만에 당당히 경제대국으로 눈부신 발전을 하기까지 누가 또는 어느 집단이 가장 많은 기여를 했는가」하는 것이었다. 대체로 지식인들은 제1의 유공자후보로 대기업 중소기업 기술자 교육자 아니면 국민이 꼽힐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여론조사결과 1위는 공무원이 압도적인 비율로 나타나 놀라게 했다. 모든 공무원들은 나라를 재건해야 한다는 사명감 속에 일부가 가난 때문에 자살할 정도의, 박봉을 견디며 정직과 성실로 밤새워 일함으로써 경제발전의 방향을 잡고 수출진행의 기틀을 세웠으며 나아가 전 국민이 협력하도록 계도하는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일본의 관리들 뿐인가. 구미선진국공무원들은 실로 엄정하고 청렴하고 성실하다. 위로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시도지사에서부터 말단 직급에 이르기까지 자기직무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일한다. 바른 행정, 정확한 행정을 당연한 의무로 여긴다.
이번 성수대교 붕괴사고는 너무나 충격적이다. 나라의 정신을 뒤흔들고 관의 기강이 붕괴된 것이며 국민의 가슴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것이다.
한마디로 관의 무책임, 불성실, 태만, 그리고 적당주의, 한건주의, 전시행정, 껍데기행정이 빚은 인재다. 끊어진 다리의 처참한 모습은 관과 건설업자들의 텅빈 양심의 모습이고 또 한국의 모습이자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이번 사건을 포함해서 10년 동안 10여 차례의 교량붕괴사고를 낸 것도 그렇고 인천북구청을 비롯한 여기저기서 공무원들이 거액의 혈세를 착복한 것, 모두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나라의 이미지를 한꺼번에 먹칠한 개탄할 사건이다.
사실 국민들은 오래 전부터 관과 건설업계의 유착악습에 너무나 많이 시달려왔다. 다리 댐 건물등 대형공사를 서둘러 완공한 뒤 준공식 다음 날부터 보수공사에 들어가 엄청난 국고를 낭비하고 많은 서민들이 십수년 고생 끝에 마련한 새 아파트가 입주 첫날부터 벽이 갈라지고 물이 새는 불실투성이어서 가슴을 끓게하고 있지 않은가. 이는 악덕업자들도 문제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책임은 관―공무원에게 있다. 법규대로 준공감리를 엄격하게 했다면 사고도 불실도 없을 것 아닌가. 실리와 업적과시를 위해 적당히 눈감아 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사건은 문민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외쳐온 사정과 개혁, 공직기강의 확립이 상층부 일각에서만 실시됐을 뿐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않았음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뿌리깊은 한국병의 원인은 여러가지이지만 가장 큰 원인은 관과 공직사회로부터 시작된다. 지도층과 관이 법과 질서를 엄격하게 준수하고 집행하면 국민은 자연히 본받게 되고 한국병도 치유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사안일과 전시행정, 적당주의가 지속되는 한 한국병치유나 국제화 선진화는 어림도 없다.
이래서는 안된다. 정부는 말과 구호로서가 아니라 비상한 각오와 자세로 국정쇄신에 나서야 한다. 관을 깊은 잠에서 깨어나도록 해야 하고 무사안일과 복지불동을 행동으로 무너뜨려야 한다.
관의 기강확립과 기풍을 일신하는데 있어 반드시 견지해야 할 것은 엄정주의원칙이다. 우선 안으로는 엄정주의를 장·차관에서부터 말단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무원들의 근무평점의 기준으로 삼는 게 긴요하다. 청와대나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고 움직이면 손해보기 때문에 적당히 보신하는 작태는 과감한 인사로써 바로잡아야 한다. 열심히 창의력을 발휘해서 일하면 응분의 혜택을 주고 태만하면 반드시 큰 불리익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 혹시나 동요할 우려가 있어 쓰다듬는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엄정한 인사원칙만이 최선의 양약이다.
또한 모든 대민업무, 각종 인·허가와 공사발주등에도 엄정주의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반드시 법규대로 공사를 할 때만 준공허가를 내주며 만일 대소를 막론하고 부실시공을 했을 경우 건설면허취소 또는 일정기간 영업정지를 명해야 할 것이다. 도대체 지금까지 건설업체들의 불실시공횡포로 숱한 서민들이 울고 있는데도 단 한번 영업정지 조치를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선진국, 선진사회는 하루아침에 이룩되는 게 아니다. 또 국제화―국제경쟁력 강화는 요란만 피운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다. 모든 원인·병인은 우리의 내부, 특히 공직사회 안에 있는 것이다. 한국병치유작업은 이제부터 공직사회의 전면재정비로 새로 시작해야 한다.
엄정주의는 일과성의 반짝식으로는 곤란하다. 최고통치권자의 단호한 의지로 밀고나가 국민에게 실증으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엄정주의원칙의 실천은 민심수습 최대의 지름길이다.<논설위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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