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다」(SHAME). 미국의 CBS텔레비전방송은 68년 6월5일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암살되자 뉴스에 앞서 이 자막만으로 스크린을 채웠다. ◆캘리포니아주 민주당 대통령후보예선에서 승리, 민주당의 지명획득에 바짝 앞장섰던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감사의 연설도중 피격된 것. 그는 바로 그 5년여 전인 63년 11월 댈러스 총성에 침몰했던 존 F 케네디대통령의 실제(당시 법무장관). 「새로운 변경」의 기수를 자처했던 케네디대통령은 미국의 꿈, 이상, 비전이었다. 그를 잃은 상처가 아물 즈음 케네디가의 또다른 암살을 목도한 미국의 총격, 분노, 자괴는 뭣에 비할 바 아니었다. ◆이제는 우리가 세계에 낯들기가 「부끄럽다」. 96년 선진국클럽인 OECD(경제개발협력기구)에 가입하겠다고 호언해온 우리다. 그런데 반영구적이라던 교통폭주의 성수대교가 폭삭 주저앉았다. 차량이 달리던 교량이 차량을 실은 채 무너져 내린 것은 지진 때나 전시를 제외하고는 아마 이번이 세계의 최초같다. 어디 이 뿐인가. 지난 해에는 무궁화호 열차전복(3월28일, 사망 78명), 아시아나항공 보잉737기 추락(7월26일, 사망 66명), 서해훼리호 전복(10월10일, 사망 2백86명)등 육·해·공 대형 참사를 겪었다. ◆충격의 사고 때마다 「사고원인 철저조사」 「책임자 엄벌」 「재발방지」등의 소리가 요란하다. 그러나 한달도 채 못돼 망각에 묻힌다. 사고원인은 상식과 법과 질서의 상실로 압축된다. 겉치레의 수습에 병인은 살아남는다. 책임지는 자도 없다. 그러나 있어야 한다. 구천을 맴돌고 있을 못다 핀 젊음등 모든 비명의 혼백들을 잠재우기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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