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정국일정관련 “때 아니다”/“안일한 시국인식 비판도 감수” 김영삼대통령은 이영덕국무총리가 성수대교 붕괴참사의 책임을 지고 제출한 사표를 반려할 뜻을 굳힌 것으로 관측된다. 2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앞서 총리가 이번 사고와 관련해 국정보고를 하게 돼있어 그에 앞서 그 뜻을 이총리에게 밝힐 것으로 보인다. 물론 김대통령은 사표를 받은지 하루가 지난 22일에도 수리여부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었다.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주례청와대수석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도 『어떤 방향성있는 언급이 없었다』고 주돈식대변인은 전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이 자리서 수석들에게 『새출발의 각오와 자세로 일해달라』고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또 『이번 참사는 생각할수록 국민에게 죄송하고 통분스러운 일』이라고 직접 유감을 표했다. 간접적으로라도 의중을 어느정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청와대의 돌아가는 전체분위기도 사표반려쪽이었다. 청와대는 당초 사고가 난직후 이총리의 사의표명 소식이 전해졌을때부터 김대통령의 반려를 점치는 쪽이었다. 총리를 비롯한 내각개편보다 사후수습이 더 중요한 시점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보다는 김대통령이 구상해 온 국정운영스케줄로 보아 개각이 쉽지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러다가 이총리가 청와대를 예방, 김대통령에게 사고경위보고를 하면서 구두로 사의를 표명하는 식도 아니고 사표를 제출해버리고 김대통령도 이 자리서 즉각 수리여부를 밝히지 않자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은 김대통령의 의중과 사태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웠으나 이날 다시 김대통령의 뜻을 감지한 것같다.
김대통령이 이총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기로 한 것은 총리경질이 곧 내각개편을 불러올 수밖에 없고 이는 내년도 지자제선거등 정치일정을 감안한 향후 국정운영구상에 큰 차질을 빚을 것을 감안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 야당이 반대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가입비준동의안을 이번 정기국회말에 처리하고 나면 개각수요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여권관계자 누구나 예견해 왔다.김대통령이 정기국회후에 전면적인 당정개편을 단행하면 그때는 명실상부하게 문민정부집권 제2기의 당정진용을 출범시켜야 한다.
따라서 이번에 개각을 하고 다시 몇개월뒤 할 수도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이번에 그같은 성격의 내각을 출범시키기에는 시기상으로 빠르다는 점을 감안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또 국회 대정부질문과 예산심의가 있고 내주에는 이붕중국총리가 방한하며 11월에는 김대통령이 아태경제협력체(APEC)지도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등 방문에 나서는 일정으로 보아도 총리경질과 내각개편이 쉽지 않은 시점이기는 하다. 김대통령이 시국인식이 안일하다는 비판이 뒤따를 것을 알면서도 사표반려로 마음을 굳히고 있는 것은 이같은 국정운영구상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같다. 이총리의 사표를 즉각 반려하지 않은 것도 여론을 좀 더 지켜보는등 참사의 충격완화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사고당일 사표를 반려했을 때의 여론반응을 감안했을 것이란 얘기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날 『지금은 사태수습에 최선을 다할 때이며 사람을 바꾼다고 모든 일이 되는게 아니다』며 『김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이 바로 그렇지않느냐』고 말했다. 민심수습을 위해 내각총사퇴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야당주장과 여론을 의식한 발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총리의 사표를 수리하고 내각개편을 한들 안될 일이 되겠느냐』는 무의식적인 자조도 담겨 있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여권이 자신감을 잃고 있다는 얘기이다.【최규식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