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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우회/동창회/종친회/각종모임만발

입력
1994.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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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끼리 만나 각박한 세상을 푸근하게/“정치색”잡음씻고 따뜻한정 나눠/농촌살리기 운동·장학금 전달도 가을이 깊어가면서 서울의 고궁 공원 학교운동장등에서는 향우회 종친회 동창회등의 모임이 크게 늘어났다. 학교나 고향친구 친지 집안어른등을 만나 흉허물없이 가슴을 드러내는 이런 자리들은 도시인의 메말라가는 심성을 촉촉히 적셔주는 청량제 구실도 한다.

 특히 올 가을의 모임들은 최근의 잇단 흉악범죄로 유달리 연대의식의 끈을 죄어 서로를 더욱 가깝고 소중하게 묶어주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예년보다 참석자도 현저히 늘어났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 16일 서울 종묘에서는 재경 함안군민회가 열렸다. 매년 10월 셋째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열리는 이 향우회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2백여명이 고향 추억담을 나누기 위해 모였다.

 20년째 한 번도 거름이 없이 열린 이 향우회가 정성을 기울이는 것은 함안출신 대학생모임인 「함안 학우회」에 장학금을 전달하고 「함안을 빛낸 사람들」을 위한 축하연및 애경사모임. 고향의 따뜻함을 전해줄 것이 없을까해서 시작한 행사다. 이날 모임에서 회장은 장학금을 전달하면서 최근의 사회분위기를 감안, 젊은이들에게 훌륭한 사회인이 돼달라는 당부를 거듭했다.

 함안향우회가 「우리 농산물살리기 운동」으로 매년 3월, 9월 농협공판장에서 갖는 장터는 「서울의 고향」이 된다. 농산물마다 고향의 체취가 짙게 배어 너나 없이 찾아 성황을 이룬다. 이 행사로 고향을 지키는 농민들을 돕고 수익금은 후원금이나 장학금으로 사용,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둔다. 유종석총무(46)는 『바쁜 시간을 쪼개 각종 행사를 갖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참여함으로써 훈훈한 고향의 정을 나누면서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재경 보성군민회」는 활동이 활발한 향우회로 유명하다. 보통 1백∼3백명 정도가 참여하는 다른 향우회와는 달리 매번 2천명 가까운 사람들이 자리를 함께 해 고향에 대한 애착과 결집력을 과시한다. 1년에 두 차례씩 모이는 정기모임 외에 격년으로 열리는 체육대회는 4천명 이상이 참여해 대성황을 이룬다. 90년 한양대에서 열린 행사 때는 예상보다 3배가 넘는 군민들이 나와 준비한 도시락이 부족해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기도 했다.

 보성군민회가 자신있게 내놓는 가장 큰 자랑거리는 고향되찾기 운동이다. 효부 효녀 효자 표창, 장학금 지급등과 함께 10년 전부터 펴오고 있는 이 운동은 자녀들에게 미풍양속을 자연스레 심어주고 있다. 방학과 명절 때 자녀들과 함께 조상의 묘와 이웃 어른을 찾아 뵙는다. 향우회는 매년 봄 백일장을 개최, 고향을 다녀온 자녀들이 고향과 조상, 어른에 대한 느낌을 내용으로 한 작품을 모집, 입상작을 시상하고 있다.

 군민회 부의장 박종주씨(51)는 『아이들이 자기 본적도 모르는 게 요즘 세태』라며 『각박한 사회분위기도 뿌리를 캐보면 조상과 고향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부족한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성군민회가 지난 해부터 시작한 「명심보감 읽기운동」도 인륜과 도덕성을 되찾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다. 자녀들에게 나눠주고 독후감도 쓰게 한다.

 최근의 향우회는 국회의원등 정치인의 감투싸움으로 얼룩졌던 예전과는 달리 순수친목단체로 탈바꿈하고 있다. 학교 가정 뿐 아니라 향우회와 같은 지역모임이 인성을 순화시키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 참가자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황유석기자】

◎서울서 열리는 「서울 향우회」/압구정토박이모임, 실향설움 달래

 70년대 초부터 본격화된 강남개발로 삶의 터전이던 압구정동을 떠난 토박이 주민들이 78년 「압구정향우회」를 만들어 실향의 설움을 달래고 있다.

 가까이 있지만 옛 모습은 어느 한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파트밀림으로 변한 삭막한 고향 땅에서는 반겨 맞아주는 이 아무도 없지만 「고향찾는 날」을 지정, 매년 3∼4차례 방문한다. 1백20여세대가 단란하게 살았던 20여년 전이 사무치게 그리워 찾고 있지만 그때마다 설움은 더욱 커진다. 특히 근래에는 그 고향이 과소비와 사치의 대명사로 눈총을 받고 있어 씁쓸하기까지 하다.

 경기 광주군 언주면 압구정리, 서울 성동구 압구정동에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으로 행정구역이 바뀌어 온 압구정동은 원래 빈부격차가 적고 도심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화목하기만 하던 곳이었다.

 물이 많고 달기로 유명한 배를 가꾸던 주민들의 생활은 비교적 넉넉한 편이었다. 지방과 서울에서 온갖 물자가 집산하는 나루터가 가까워 물자도 풍족했다. 단오날이면 5백년 된 느티나무에 그넷줄이 걸렸고 강변 모래밭에는 씨름판이 벌어져 이웃간의 정을 다졌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일들이 회원들의 향수 속에만 남았을 뿐이다. 백사장은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올림픽대로로 변했다. 배가 드나들던 포구는 동호대교 성수대교등 거대한 한강교량의 위용에 흔적조차 없어졌고, 배밭은 아파트단지와 대로로 바뀌었다. 유일하게 고향의 모습을 간직하던 느티나무마저 최근 공해에 시달리다 명을 다해 회원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향우회는 20일 제17회 정기총회를 가졌다. 이날 압구정 옛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쉴 곳도 없어진 고향땅을 걸어서 한 바퀴 둘러보며 추억을 더듬었다.

 자취를 찾을 수 없는 고향이지만 향우회는 분기별로 회보를 만들어 각자의 동정을 알리고 자녀장학금·불우회원돕기활동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2백여명으로 시작한 향우회가 고향의 추억이 많지 않은 2세들의 모임으로 바뀌어가면서 회원수는 더욱 늘어 이제는 매머드 단체로 변해가고 있다.

 조기증회장(66)은 『압구정동이 옛날처럼 이웃간에 정이 깊고 화목한 마을로 변해준다면 서운한 마음이 좀 덜할 것 같다』고 말했다.【염영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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