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핵규명 유보… 북 시간벌기 작전땐 긴장재발/북,경제난극복 대가 개방고민/미는 NPT유지 등 성과 “짭짤” 북미회담타결로 가장 큰 이익을 본 쪽은 누구일까. 협상에는 완전한 승리자와 완전한 패배자가 있을 수 없지만 한쪽의 이익만큼 다른 한쪽이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의 요소가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번 협상의 직접적 이해 당사자인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의 대차대조표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우선 우리나라는 안보이익을 얻게 됐다. 한때 전쟁위기론까지 야기했던 북한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됐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를 지닌다. 동시에 북한핵의 현재및 미래에 대한 투명성이 보장된다는 것은 한반도 긴장완화의 구조적 기틀이 마련됐다는 점을 뜻한다. 합의에 포함된 남 북대화는 긴장완화및 남북교류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경협활성화등 의미있는 남북관계의 진전도 예상된다. 이와 함께 한국형 경수로의 채택은 향후 경수로지원에 있어 우리측의 중심적 역할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핵규명이 상당기간 유보된 것은 부담으로 남게 됐다. 북한이 이번 합의를 시간벌기에 활용할 경우 안보위협은 되살아날 수도 있다.
만약 북한이 특별사찰의 직전단계에서 합의내용을 이행치 않는다면 우리는 거액의 지원금만 허비한채 다시 안보위협아래 놓이게 될 가능성도 있다. 그같은 최악의 경우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40억달러의 지원금 가운데 70%가량을 우리가 담당할 것으로 보여 경제적 부담은 적지 않다.
이밖에 협상과정에서 나타난 미국과 북한의 직거래는 향후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과의 공조에 균열이 발생했다는 지적은 미국을 축으로 해 온 우리 외교정책의 전반적 재검토를 요구하게될 수도 있다. 우리측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남북문제의 당사자 해결원칙이 이번 협상으로 인해 왜곡된 것도 앞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야기할 수도 있다.
북한은 핵카드로 최대의 정치경제적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경수로지원은 물론 그 과정에서 에너지 지원까지 확보함으로써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됐다. 미국과의 관계개선은 그동안 북한의 목줄을 죄었던 사실상의 경제제재가 해제됨을 의미한다.
또한 다음 수순인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거액의 배상금을 받아낼 수도 있게 됐다. 경제난으로 체제위기에 몰렸던 북한으로서는 기사회생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외교적으로도 미국 일본등 서방과의 직접 채널을 확보함으로써 한국의 북방외교 압박에서 벗어나게 됐다. 다만 서방과의 관계개선으로 체제유지의 최대 위협요소인 개방의 부담을 안게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번 협상에서 자국의 이익을 충분히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내년에 만료되는 NPT체제의 유지를 최우선 목표로 설정했던 미국은 협상타결로 이를 무난히 달성했다. 북한을 NPT체제에 묶어둠으로써 다른 핵약소국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게 됐다. 취임이후 별다른 외교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클린턴 행정부로서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대어를 낚은 셈이다. 더욱이 미국은 경수로 지원에서 1억달러정도만 부담할 것으로 알려져 이같은 외교성과는 더욱 강조될 수 있다.
이밖에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한반도및 동북아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증대시킬 수 있게 됐다. 다만 미국은 지나치게 자국의 이익에만 충실했다는 한국내의 비판여론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정광철기자】
◎북미협상 과정/북 핵카드에 끌려 지루한「핵씨름」/작년 특별사찰거부로 촉발… 한때 위기/미와 직접대화… 우여곡절 끝에 “물꼬”
북한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나온 길은 실로 멀고도 험난했다. 북한은 8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이후 조약상의 의무인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핵안전협정체결을 계속 거부하다 국제적 압력에 부딪쳐 92년 1월 협정에 서명했다. 그러다 북한핵문제가 중요한 국제적 관심거리로 떠오른 것은 지난해 2월 북한이 IAEA의 특별사찰 요구를 거부한 직후부터였다.
이후 북한핵문제는 IAEA와 유엔총회,안보리의 수많은 논의와 결의를 거쳐 국제제재와 북한의 전쟁불사 위협이 맞붙은 심각한 위기상황까지 촉발하면서 악화일로를 걸어 왔다.
북한은 IAEA의 첫 특별사찰 촉구결의안(93·2·25)이 채택되자 NPT탈퇴를 선언했고(93·3·12) 지난 5월에는 국제제재압력에도 불구하고 영변 5㎿ 실험용원자로의 연료봉을 임의로 인출, 폐연료봉을 무기화했다. 이에 IAEA가 북한에 대한 최초의 국제제재인 원조중단을 결의하자(94·6·10) IAEA를 탈퇴해 버렸다(94·6·13).
이 과정에서 북핵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한시적 목적을 갖고 태어난 것이 바로 북미고위급 회담이다. 뉴욕의 1단계회담(93·6)에서 NPT탈퇴를 선언한 북한의 탈퇴유보를 끌어냈고 제네바의 2단계회담(93·7)에서 IAEA와의 사찰협상재개를 약속받았고 이번 3단계회담에서 일괄타결을 매듭지었다.
그러나 2단계회담이후 지난 15개월은 북핵문제를 둘러싼 긴장이 어느때보다도 고조된 시기였다. 2단계회담의 합의내용에 따라 북한과 IAEA는 올해 1월부터사찰재개를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가 결렬됐으며 그후 그레이엄목사가 김일성의 메시지를 백악관에 전달하는 우여곡절끝에 북한은 2월중순 핵사찰을 수용했다. 이에 따라 3월1∼15일 IAEA사찰단의 북핵사찰이 이뤄졌으나 핵재처리시설인 영변 방사화학실험실에 대한 사찰을 북한측이 거부하는 바람에 핵물질의 전용여부를 검증하지 못한채 종료됐다. 이후 3월31일 유엔안보리가 추가사찰을 촉구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하고 북한이 이의 수용과 함께 영변5㎿원자로의 연료봉교체에 IAEA의 입회사찰을 요구함으로써 5월17일부터 사찰이 재개된다.
북한은 그러나 사찰기간중 연료봉교체를 빠른 속도로 진행, 결국 IAEA는 북한핵의 계측가능성이 불가능해졌다고 선언하고 마지막 사찰을 종료하게 된다. IAEA의 대북한제재결의안 채택과 북한의 IAEA의 탈퇴선언은 이에 따른 당연한 수순이었다. 더 이상 핵사찰의 여지는 없어졌다. 이후 고조된 북핵긴장은 카터전미대통령의 방북(94·6·15∼18)과 북한의 남북정상회담제의(94·6·18)및 우리측의 수락등으로 일대 전기를 맞게 된다.
이같은 성과에 힘입어 제네바에서 북미3단계회담이 시작됐으나 바로 이날 북한 김일성이 돌연 사망하면서(94·7·9) 회담은 연기됐다. 그러나 8월5일부터 재개된 북미3단계회담에서 지루한 줄다리기를 거쳐 이번 합의에 도달,서명만을 남겨놓게 됐다.【제네바=한기봉특파원】
◎북미협상 일지
△93년
▲3월 12일=북한,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선언
▲6월 2∼11일=북미1단계고위급회담 뉴욕개최. 북한 NPT 탈퇴유보.
▲7월 14∼19일=북미 제네바서 제2단계 고위급회담.
△94년
▲1월 25일= 북한·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협상 결렬
▲2월 4일= 그레이엄 목사, 김일성 메시지 백악관 전달
▲2월 15일= IAEA,북한핵사찰 수용발표
▲3월 3일=미국, 팀스피리트 중단 발표
▲3월 1∼15일=IAEA, 북한 핵사찰. 방사화학실험실 사찰실패
▲3월 31일= 유엔안보리, 추가사찰수락촉구 의장성명 채택
▲5월 17일=IAEA 새 사찰단 북한 도착
▲6월 2일=IAEA, 북핵 추후계측 불가능 안보리 보고
▲6월 10일=IAEA, 북한제재결의안 채택
▲6월 13일=북한 IAEA 탈퇴 선언
▲6월 15∼18일=카터전미대통령 북한 방문
▲6월 18일=북한, 남북정상회담 제의. 한국 수락
▲7월 8일=제네바 3단계회담 시작, 북한 김일성 사망.
▲7월 9일= 북한, 김일성사망 발표. 제네바회담 취소
▲8월 5∼12일=북미3단계고위급 1차회담.
▲9월 23일∼현재=3단계고위급 2차회담. 북핵문제 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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