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핵문제를 둘러싼 북미회담이 예상대로 특별사찰의 연기 및 경수형 원자로 건설지원과 북한의 기존 핵시설 폐쇄를 교환조건으로 하면서 타결되었다. 회담이 결렬되었을 경우 예상되는 사태를 미루어볼 때 일단 합의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분명히 다행한 일이지만 전적으로 개운한 것만은 아니다. 사실 어떤 협상도 참가 당사자 모두가 얻는 것이 없이는 타결될 수 없다. 이번의 북미회담에서도 북한이나 미국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얻고 협상이 타결되었기 때문에 모두가 승리자가 된 셈이다. 다만 현안의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남한이 협상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불쾌한 점 적지 않지만 북한에 지원될 경수로가 한국형일 것이 약속되었고 남북대화의 재개가 북미관계 개선의 전제로 얹혀져 있다는 점에서 그런대로 협상결과 수용의 명분은 잃지 않았다. 이번 북미협상의 타결을 지켜보면서 세 가지 점에서 깊이 생각해야 될 바가 있다고 여겨진다. 하나는 북한문제를 둘러싼 국내의 의견조정과 의사결정과정에 관한 것이다. 과연 협상의 결과를 북한이 얼마나 충실히 이행할 것인가에 관한 점이 다음의 문제이고 한미공조의 의미에 관한 것이 마지막 점이다.
국내 측면에 관련된 첫 번째의 문제 가운데 큰 것의 하나는 북한문제를 둘러싼 국내의 서로 다른 견해간의 조정문제이다. 남북한문제는 남한과 북한의 정치적 군사적 대립이라는 현실 위에 전개되고 있다. 대단히 불행한 일이지만 이것은 50년간 고착된 구조로 존재한다.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문제를 보는 감상적 견해들이 존재하는한 남북한문제의 현실적 해결은 어렵다. 이러한 대결사실의 인정요구를 냉전적 사고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엄연한 현실을 외면할 경우 문제해결은 더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감상적 주장들은 북한이 남한과의 대화를 피할 수 있는 구실만 제공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무런 문제거리가 될 수도 없었고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전혀 기대도 안했을 「조문」문제를 먼저 일으켜 북한측에 대화회피의 구실을 제공한 것이 누구였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내문제와 관련한 두번째의 문제는 일관성의 문제이다. 일관성의 문제는 시간대에 관련된 것과 부처간의 조정문제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번째의 일관성 결여는 실제 기대치와 표현방법상의 간격이 있어야 하고 강경·온건이 섞어져야 한다는 협상전술상 의도적으로 취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안된다. 문제는 오히려 실제의도를 숨김없이 보여주는 좀 소박한 태도에서 발견되었다. 이 때문에 관련부처간 정책조정의 부재가 의심되기도 했다. 부처간에 드러나는 일관성 결여는 협상상대로 하여금 우리에게 분명히 설정된 입장이 없다는 그릇된 인식과 그에 따른 오판을 결과할 수 있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우리가 크게 더 잃은 것이 있었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최소한 협상시간만은 단축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북미회담에서 타결된 내용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한국형 경수로의 지원문제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는 비용만 대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구심을 보인다. 한미간에는 한국표준형의 채택이 합의된 것으로 발표되었지만 원자로지원이 판매와 건설로 그치지 않고 사후정비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협조태도를 필요로 하는데 북한이 과연 이 점을 뒤에 가서도 흔쾌히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전혀 우려가 없는 바가 아니다.
다음 북미관계 개선의 조건으로 남북대화의 재개가 걸려 있지만 관계개선이 억지로 될 일은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감상적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에서든 환상을 가질 필요는 없다. 형식적으로는 대화를 벌여놓고 실질적으로 전진시키지 않는 고도의 기술을 북한이 발휘해온 점에 대해서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다. 여하튼 북미관계개선이 우리에게 못마땅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남북대화에는 형식적으로 응하면서 관계개선된 미국에 대해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들고 나올 경우 부딪치게 될 외교적 어려움을 미리 예상하고 대비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한미공조에 관한 문제가 있다. 공조가 강조되는 것은 의견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암묵적으로 전제한다. 미국에는 세계전략상, 또 국내정치상 이번 타결결과가 만족스러울 수 있겠지만 한국의 입장은 약간 다르다. 이번의 결과는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미국의 견해가 더 많이 반영되었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한미간의 이견조정을 위한 추가논의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논의과정에서 우리는 불만족스런대로 우리가 받아들인 북미간 합의문이 그나마 북한에 의해 충실히 이행될 수 있도록 미국의 확고한 태도를 촉구해야 할 것이다.<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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