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핵협상이 마침내 타결되었다. 이로써 북한이 NPT를 탈퇴한 이래 한반도의 긴장을 조성하는등 우여곡절을 거듭하면서 1년반 이상 끌어온 핵문제는 드디어 근원적 해결의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이러한 해결을 이끌어내는데 있어서 한미의 굳건한 공조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의 핵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일차적으로 한반도의 긴장상황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평화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은 핵문제 해결이라는 중차대한 이익을 위해 북미회담이 성사되도록 막후에서 노력해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에게 이렇다 할 대북한 지렛대가 없는 상황에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현실적으로 한미 공조체제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핵문제 해결의 방법과 시기에 있어서 한미의 이해관계가 다소 미묘한 차이를 보인 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 있어서 범세계적 NPT체제 유지 및 국내정치 측면을 중시하여 타결을 서두르는 모습을 보인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핵무기 개발 저지라는 한미의 목표에는 추호의 차이도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핵문제 해결의 근본적 틀이 마련된 이상 이를 완전히 이행되도록 해야 하는 일이 남았다. 이 과정에 있어서 미국은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첫째, 북한이 합의사항을 완전히 이행하도록 부단한 경계를 늦춰서는 안될 것이다. 비록 이번 합의가 핵문제의 근원적 해결의 틀을 담고 있지만, 그것은 또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북한은 문제 해결을 위한 광범위한 원칙 및 목표의 윤곽에는 비교적 쉽게 합의해 주지만, 이후 이를 구체적으로 이행하는 단계에서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 전력을 갖고 있다. 7·4남북공동성명, 기본합의서,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등의 예가 그러한 사실을 잘 뒷받침해 주고 있다.
둘째, 핵문제의 이행과정에 있어서도 한미간의 긴밀한 공조체제가 유지되어야 한다. 그것만이 북한의 성실한 이행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다. 또한 북미간의 관계개선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남북관계의 진전이 병행되지 않을 경우, 한반도의 냉전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에 긴요한 한반도의 냉전종결은 사실상 남북간의 관계개선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미국은 자신의 이익에 치중한다는 인상을 한국민들에 주어서는 안될 것이며, 한국의 동맹국으로서 한반도의 전반적인 안정과 평화, 그리고 통일을 위해 기여한다는 점을 한국민들에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셋째, 이와 관련, 북미관계개선은 반드시 남북대화의 진전과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번 합의 결과 역설적이지만 어떤 면에 있어서는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직면한 북한문제는 비단 핵문제만이 아니다. 핵 이외의 생화학무기 장거리미사실등 대량 살상무기에 대해서는 어떠한 해결도 없는 상황이다. 북한의 인권문제 또한 좌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제 미국은 핵합의의 완전한 이행은 물론 이러한 문제들도 포괄적으로 타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미국에 기대되는 것은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유도하여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일일 것이다.
한편 이번 합의를 통해 북한은 나름대로 중대한 성과를 올렸다고 판단할 것이다. 동구의 사회주의권이 연일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사태에 직면한 이래 북한정권은 체제생존에 대한 위협요인을 체제 내부에서 찾기보다는 한국 미국등 외부의 책동에 두고 그 탈출구를 핵카드를 통해 확보한다는 나름대로의 전략을 추구해 왔다. 북한은 이번 합의에서 알 수 있듯이 북미관계개선과 경협을 확보할 수 있음으로써 그토록 염려하던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해소하고 체제생존을 위한 바람직한 대외환경을 조성하는데 일단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정권담당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은 체제생존의 관건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체제 자체의 모순에 기인한다는 사실이다. 즉 사회주의권이 무너진 것은 자본주의의 책동이 아니라 사회주의체제의 자체모순에 있다. 따라서 북한이 처한 총체적인 위기상황도 따지고 보면, 경직되고 시대에 뒤떨어진 주체사상 이외에 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다. 북한정권이 생존할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기능부전에 빠진 북한체제를 개혁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거듭 천명하거니와 북미 핵협상의 타결은 문제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첫 부분일 뿐이다. 제네바 합의사항이 반드시 이행될 때에만 한반도 평화라는 새로은 시작이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을 당사자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이다.<외교안보연구원장>외교안보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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