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완강한 거부 「내부이상」의혹/김 체제 안정땐 다각접촉 예상 제네바 북미3단계회담의 완전 합의에 따라 북한핵문제로 꽉 막혀있던 남북관계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 또한 정부가 그동안 견지해온 「핵우선 대북정책」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그러나 북미간 합의가 이루어 졌다고 해서 남북대화나 남북간 경협등이 곧바로 재개되기는 힘든 상황이다. 우선 북한은 이날 현재까지도 공식적인 권력승계가 이루어지지 않아 「권력공백」 상태인 데다 우리 정부로서는 북미간 합의내용이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에서 국민여론의 검증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단 이날 상오 이홍구부총리겸 통일원장관 주재로 통일관계장관회의를 갖고 북미회담 합의내용에 대한 우리측 입장을 정리하는 한편 향후 남북관계 활성화를 위한 몇가지 조치들을 단계적으로 추진해나가는 방안을 논의했다 . 이와관련, 이부총리는 북미회담이 타결 기미를 보였던 지난 14일 국정감사에서 『북한 핵문제가 타결될 경우 우선 한동안 중단돼 있던 남북경협을 단계적으로 풀어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경협재개는 임박한 것으로 일단 보여진다.
정부는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대화재개 여부는 선뜻 결정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 김정일체제가 공식 출범해 안정을 되찾는 동시에 새 체제 스스로가 대화의 장에 성실하게 나서는 태도를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부총리 역시 최근 몇차례 공식석상에서 언급 했듯이 북한 스스로가 「역사적 대변화」를 시도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이 시점에서 남북관계가 활성화할지 안될지의 문제는 북한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아직까지도 공식적인 권력승계가 지연되고 있는 북한 입장에서 보면 이번 북미회담 결과는 새로운 김정일체제 출범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추진력을 더해 주는 더없이 좋은 「선물꾸러미」일 것이다. 이는 지난 14·15일께 갑자기 제네바 북미회담이 타결움직임을 보였던 데서도 알 수 있다. 즉 북한은 김일성사망 직후에는 꺼내지도 않았던 「1백일 추모기간」을 뒤늦게 설정, 김정일의 당총비서직 승계지연의 구실로 삼은뒤 지난 15일 1백일 추모행사를 치름과 동시에 곧바로 등극하려 했었다는 시나리오와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 행사를 다음날로 미뤘으며 행사 당일에도 김정일의 등장을 놓고 혼선을 비쳤었다. 16일 하오 북한이 추모행사와 김정일의 모습을 외부세계에 공개하는 순간부터 북미회담 역시 한때 결렬 조짐에서 타결쪽으로 급선회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논리대로라면 남북대화를 북미간 합의문에 삽입하느냐 마느냐가 북한에는 의외로 중요한 이슈가 아닐 수도 있다. 남북대화는 일단 한다고 해놓고도 언제든지 틀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도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도 북한이 연락사무소나 경수로·대체에너지등 「선물꾸러미」를 마다한채 남북대화의 삽입여부를 놓고 완강한 거부입장을 보였던 것은 북한 내부에 모종의 이상조짐이 있지는 않나 하는등의 의혹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어쨌든 북한도 남북대화를 북미회담 합의문에 삽입함으로써 국제적인 약속을 한 이상 어떤 형식이든지 대화 자체는 재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김정일체제가 출범 하더라도 남북관계 전망만은 미지수이다. 남북이 서로 마주앉아 미소는 지으면서도 북한의 극렬한 남한 비방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통일원의 한 관계자는 『북미간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북한이 진정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할 의지를 보일지는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그러나 김정일체제가 조기안정을 되찾아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획기적인 개방정책을 추진 한다면 다양한 채널의 남북대화들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홍윤오기자】
◎연락사무소/후속협의 창구역에 비중/미,국교정상화 위한 첫단추로 간주안해
미국과 북한은 고위급회담 타결의 첫 이행수순으로 연락사무소개설을 위한 실무급협의를 우선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제네바 합의」가 발표된 이후 미국으로서는 당분간 핵확산금지조약(NPT)복귀등 북한의 후속조치를 지켜보겠지만 어차피 연락사무소는 북미 양측간 후속협의를 진행시키는 창구역할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측은 지난달 평양을 방문, 이를 위한 실무진의 사전답사를 마친 상태이므로 이번에는 북한대표들이 워싱턴을 방문해 기술적인 문제들을 논의할 차례이다.
미국은 그러나 연락사무소 설치를 쌍방간 외교정상화의 첫단추로 당장 간주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무소설치를 위한 협의가 본격화하고 수개월내에 업무개시가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북핵동결 및 후속조치들에 대한 논의가 주종을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핵문제의 완전한 해결 없이 북미 관계개선논의가 활발해 질 수 없다는 게 미국의 입장인 것이다.
북한은 연락사무소를 워싱턴에 설치해도 인공기를 내걸 수 있는 처지는 아직 아니기 때문에 대화채널의 상설을 기하는 것 이상을 기대하긴 그만큼 어려운 입장이다. 미국은 다만 최근 베트남과의 연락사무소 개설문제를 진일보시킨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북한과의 평화무드를 국내정치에 유익한 쪽으로 해석하는 눈치이다.
미국은 따라서 연락사무소 설치를 위한 대북협의가 지체될 이유는 없다고 보고 있으며 이의 연장선상에서 핵협상타결에 따른 후속이행조치들을 주의깊게 살필 것으로 예상된다.【워싱턴=정진석특파원】
◎폐연료봉/경수로완공까지 북 보관/건설과정 문제발생할 경우 「불씨」될수도
북한이 녕변의 5㎿원자로에서 빼낸 8천여개의 폐연료봉은 당분간 한국과 미국등이 북한에 경수로건설을 약속대로 지원하는 것을 담보하는 압력수단이 될 전망이다.
경수로가 완성되기전까지는 북한이 폐연료봉들을 제3국에 넘기지 않고 계속 보관할 수 있도록 미국측이 양보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자국내에 폐연료봉들을 보관하고 있는 동안에는 경수로지원이 여의치않을 경우 언제든지 이 폐연료봉을 재처리하겠다고 나설 카드를 쥐고 있는 셈이 됐다.
물론 북한은 이번 합의에서 경수로건설 기간에 폐연료봉을 재처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분명히 했다. 이는 방사화학실험실 폐쇄약속과도 직접 관련이 있다. 방사화학실험실이 가동되지 않는다면 폐연료봉의 재처리는 어렵다.
따라서 경수로지원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동안은 폐연료봉들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경수로건설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폐연료봉을 북한에 그대로 보관키로 한 것은 커다란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미국측은 당초 경수로시공과 함께 폐연료봉의 제3국 이전등 영구폐기를 관철시키려고 했지만 북한측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정부도 이 부분에 대해서 불만을 표시하고 있지만 경수로건설기간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전면사찰등으로 감시가 가능하기 때문에 크게 우려하지는 않고있다.
북한은 현재 냉각수조에 보관중인 폐연료봉을 건져내 콘크리트등으로 밀폐한뒤 건식 보관할 계획이며 조만간 있게될 전문가 회의에서 미국측과 폐연료봉의 안전한 보관방법을 협의할 예정이다.
이후 북한과 미국은 다시 실무전문가 회의등을 통해 폐연료봉을 궁극적으로 제3국에 이관하는 방안을 논의키로 되어있다.【이계성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