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수용” 내심불만·곤혹감/대북 일관전략 재정립 자성논 제네바 북미고위급회담을 바라보는 우리정부의 심사는 복잡하고 착잡하다. 회담에서 최종 타결될 내용이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북미협상의 결과를 배척할만큼 「힘」이나 「카드」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정부는 일단 제네바회담의 추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불만과 곤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정부는 『북미회담의 합의는 북한의 NPT잔류, 핵동결로 요약될 수 있으며 이는 한반도의 안정체제구축을 의미한다』고 공식입장을 정리했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크게 봐달라. 북한핵 동결후 남북대화를 진전시킬 경우를 생각해 보라. 우리에게 유리한 국면이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최악의 경제사정, 취약한 권력기반으로 미루어볼 때 서방의 물결이 밀고 들어갈 몇년후 김정일체제가 어찌될지는 명확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한마디로 북한핵동결로 단기적인 불안요인을 제거했고, 남북대화의 재개로 남북평화체제구축, 통일국면조성 등의 장기적인 구도를 만들어 갈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뭔가 불만스럽고 허탈한 분위기가 존재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가 요구했던 「마지노선」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는 그동안 미국과의 정상회담, 외무장관회담 등 온갖 채널을 통해 양국의 입장을 조율,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을 몇가지 정리했다.
그중에서도 핵과거의 투명성보장(특별사찰), 폐연료봉처리문제, 남북대화재개는 정부가 전력을 기울여 온 핵심현안들이다. 특히 특별사찰에 대해서는 김영삼대통령이 누차 『이는 결코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공언했을 정도였다. 한미간에도 『핵과거의 투명성이 보장되기 전에는 경수로건설에 착수할 수 없다』는 원칙이 서 있었다. 하지만 제네바 회담에서 미국은 특별사찰의 시기를 「경수로건설의 중요 기자재가 반입되기 전」으로 양보하고 말았다.
또한 한미 양국정부는 그동안 폐연료봉의 제3국이전, 방사화학실험실의 해체를 내부적인 협상원칙으로 정했다. 그러나 이 역시 변질됐다. 폐연료봉은 일단 북한에 건식보관됐다가 경수로 1기가 완성된후 제3국으로 이전키로 된 것이다. 방사화학실험실도 완전해체가 아니고 우선은 봉인으로 결말이 났다. 이런 합의만을 놓고보면 제네바 합의문의 어디에서도 우리정부의 입장을 발견할 수 없다.
정부내 일각에서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도 제네바합의에서 우리가 완전히 배제됐다는 점 때문이다. 40억달러에 달하는 경수로지원비용을 우리정부가 떠안은 현실을 빗대, 『말은 못하고 돈만 내는 봉이냐』는 비유마저 나오는등 미국의 협상태도를 비난하는 여론이 높다. 뿐만 아니라 『경수로 건설이 진척된후 특별사찰시기가 됐을 때 북한이 여러 이유를 내걸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어떤 대처방안이 있는가』라는 지적도 있다.
또 『북한이 방사화학실험실을 봉인했다가 경수로건설이 궤도에 오른후 재가동의 협박을 할 수도 있다』는 불신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외교안보전문가들은 『우리정부의 외교능력을 냉정하게 돌아볼 시기가 됐다』고 지적하고있다. 이들은 『미국이 북한을 핵확산금지조약체제에 묶어 놓기 위해 한미공조를 저버리는 처사를 서슴지 않고 있다』면서 『또 정부측은 별다른 카드가 없다고 말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뭔가를 이뤄내는 것이 바로 외교』라고 비판하고 있다. 아울러 국민들도 『클린턴행정부가 중간선거를 앞두고 업적올리기에 급급해 북한에 시종 끌려다님으로써, 우리를 실망시켰다』고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런 불만속에서 정부당국자들과 외교전문가들 사이에는 『강경에서 온건을 순간순간 넘나드는 대북정책도 일관된 목표와 전략으로 재정리돼야 한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는 자성이 일고 있다.【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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