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로 단계마다 약속이행 검증필요/북 실천 보장할 「한미 새 공조틀」 주목 북한핵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북한과 미국사이에 진행돼 온 고위급회담이 타결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실질적인 문제해결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제네바회담에서 북미사이에 타결된 내용은 지난번 8·12합의때와 마찬가지로 공동합의문형식으로 발표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 문서자체가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현재로선 북한의 성실한 이행을 보장할만한 강제수단이 없어 경우에 따라서는 합의내용자체가 중도에 사문화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특히 북한의 과거핵투명성의 규명시기나 폐연료봉의 제3국이전시기등이 경수로지원 시작 이후로 미뤄짐으로써 경수로지원이라는 경제적 효과를 얻은 이후에도 북한이 계속 그들의 「핵카드」를 유지하는 것을 묵인한 셈이 돼버렸다.
이런 상황속에서 북미간 합의내용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후속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 정부로서는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약속이행도 중지될 것이고 북한핵문제는 다시 제재국면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경수로건설및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북한은 강제적 의무차원은 아니지만 「상황의 논리」로 볼 때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렇지만 당장 대북경수로지원을 위해 재원을 마련하고 국제적 컨소시엄의 구성을 관련국과 협의해야하는 정부는 북한이 핵투명성 규명약속을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에 대한 대비책에 더 큰 비중을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국제컨소시엄구성과정에서 북한의 약속불이행에 대비한 관련국의 「행동지침」을 마련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도 이때문이다.
국제컨소시엄에는 한미일을 포함, 중국 러시아등 적어도 10여개국이상이 참여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 국가의 이해관계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어 미리 행동통일의 원칙을 세워두지 않으면 나중에 관련국들간에 불협화음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또 경수로의 착공에서부터 준공에 이르기까지의 단계단계마다 적절한 제동장치를 마련해 두는 것이 핵투명성과 관련된 북한의 약속이행을 그나마 보장해 줄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대북경수로건설에 있어서 뿐만아니라 건설을 책임질 국제컨소시엄의 의사결정에서도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미관계개선과 병행추진돼야 하는 남북대화부분은 한층 미묘한 성격을 띠고 있다. 북한은 제네바회담의 막바지까지도 남북대화의 재개필요성 자체를 합의문에 포함시키려는데 대해 강력히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남북대화부분이 합의문에 명시되더라도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정치적 또는 선언적 규정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 확실해 보인다. 더욱이 남북대화는 남북이 당사자가 돼야 하기 때문에 미국의 중재노력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결국 대화재개의 부담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몫인 것이다.
정부는 북한이 합의문에 명시할 한반도비핵화선언의 이행은 둘째로 치더라도 경수로지원을 받기위해 결국은 대화에 응해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부는 대화재개의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북미간 협상타결이후 어떤 시점에 어떤 방법으로 남북대화를 재개할 수 있을지에 확실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북미간 협상타결을 대세로 인정하면서도 그 합의내용 이행의 보장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거듭 그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 한미공조의 완전한 복원이다.
북미간 합의내용에 불만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합의내용의 이행을 보장하고 북한의 약속불이행시 국제적 대응체제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미국과의 공조는 여전히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한미가 회담타결이후 어떠한 보장장치를 마련해 갈지가 주목된다.【고태성기자】
◎북미회담 제네바표정/남북대화 명문화 막판 진통/북 “당사자문제”… 문구표현 자체를 거부
늦어도 15일에는 합의성명이 발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던 북미고위급회담이 16일 3시간의 수석대표회담을 재개하면서도 합의를 보지 못하고 주춤하고 있다.
양측은 15일 상오 11시45분부터 북한대표부에서 수석대표를 포함한 고위대표단 회담을 두시간 가진데 이어 하오 5시반부터 2시간동안 전체대표단 회담을 열었다. 과거회담의 전례를 볼때 수석회담에 이은 전체회담은 합의성명을 채택하는 마지막 절차여서 곧 합의성명이 발표될 것이란 분위기를 더해 주었다.
미국측도 이날 완전합의를 기대한듯 북한대표부에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대표부공보관이 폐막회견에 대비,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하오 7시반 갈루치미수석대표등 미국대표단은 굳은 표정으로 회담장에 나와 보도진들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돌아갔다. 강석주북한수석대표와의 악수도 없었다. 분위기가 급반전된 순간이었다. 양측은 회담이 성과없이 끝난 이유는 밝히길 거부했으나 이날 회담의 암초는 핵문제가 아닌 남북대화문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사찰과 폐연료봉처리, 경수로 건설지원, 북한의 핵동결조치등 핵문제의 중요현안들은 모두 합의가 이뤄진 상태다. 양측은 13일부터 합의안을 작성해가면서 미타결분야에 대한 타개를 시도했고 마지막까지 의견접근을 이루지 못한 부분이 남북대화 문제였다. 미국과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이행하기위한 남북대화가 핵문제의 해결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므로 합의성명에 남북대화의 재개합의가 반드시 포함돼야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대화재개의 구체적인 시한과 형식까지 명시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측은 합의성명 발표후 3개월 이내에 또는 연락사무소설치이전에 책임있는 남북한 당국자간의 대화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측은 남북대화는 당사자간에 해결해야할 문제라며 이를 문안에 포함시키는 것 자체를 거부해 왔다.
북한이 남북대화 재개를 강력히 반대하는 이유는 우선 김일성사망후의 조문파동으로부터 시작된 남북관계의 악화에 대한 감정적 대응이자 한국의 보수세력에 대한 시위라는 분석이 있다. 또 막판 협상의 지렛대로서 미국과 한국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이 문제를 걸고 넘어져 다른 문제에서 양보를 얻어내려는 전술적 측면도 계산했을 것이다.
한편 회담이 타결분위기에서 반전된 것은 미국이 한국정부의 요청에 따라 보다 강력한 새로운 요구를 했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추측도 있다. 미국의 협상자세에 대한 한국정부의 불만과 지나친 양보라는 한국의 비판적 여론을 미국이 의식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고위급회담은 한두차례 더 절충을 가진후 빠르면 17일께 합의성명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현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양측은 무엇보다도 3주가 넘게 진행돼 타결을 눈앞에 둔 회담이 이 한가지 문제로 인해 결렬되는 상황이 오는 것을 피하려 할 것이다. 양측은 남북대화의 재개시한을 구체적으로 못박지 않고 남북대화의 가능한 한 빠른 재개를 위해 노력한다는 선에서 합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미양국은 이번 회담에서 방법론보다는 기본원칙의 우선적 해결을 중시하는 자세를 보여왔고 남북대화 시한 설정에 대해서도 다소 신축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당초의 정부입장과 여론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점에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고 따라서 회담타결을 1백% 확신할 수 없는 요인이 되고 있다.【제네바=한기봉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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