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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가치관 문제」지적미흡/김성곤 서울대교수·영문학(나의지면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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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가치관 문제」지적미흡/김성곤 서울대교수·영문학(나의지면평)

입력
1994.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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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파」·「세무비리」 사실보도 그쳐/정신적 업적의 소중함에 비중두길 지존파사건을 그렇게도 경쟁적·대대적으로 보도하던 언론뉴스에서 어느날 갑자기 지존파가 사라지고 대신 사회봉사자들의 숨은 미담들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언론 보도가 과도하게 선정적이어서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사실보도 자체를 없애버린 것은 또 무슨 변덕인지 알 수가 없다. 불과 며칠전만 해도 숨은 미담들을 삭제해 버린 바로 그 손들이 이제는 그것들을 머리기사로 뽑고 있다. 또 한쪽에서는 슬그머니 5공때부터 악용되어 온 「충효사상」의 부활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미봉책으로 사회악이 근절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지존파 사건 이후에도 온보현사건과 김경록사건이, 그리고 인천 북구청사건 이후에도 남구청과 동구청사건이 계속해서 터지고 있지 않은가.

 좀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오늘날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는 고질적 부정부패와 황금만능주의를 척결하고 인간생명을 중시하는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는 정통성 없는 정권이 들어서서는 안되고 어른들은 퇴폐와 향락을 삼가야 하며, 대기업은 공해를 배출하지 않고, 백화점은 사기세일이나 불량식품 판매를 즉각 중지해야 한다. 사실 더 많은 대량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공해배출업소와 불량식품 제조·판매업자들을 지금처럼 그대로 놔두는 한 살인범 15명의 사형집행은 일시적 전시효과외에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언론은 사건 보도 그 자체에 그치지 말고 대국적인 견지에서 바로 그와 같은 심층문제까지도 지적해주어야 할 것이다.

 또 국민들은 「민주화」를 곧 계급 철폐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최근 일어난 군부대 하극상사건이 준 교훈은 자유란 자신의 본분과 의무를 지키는 사람들만이 향유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이다. 하극상을 일으킨 병사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남용함으로써 스스로 병영의 민주화를 포기하는 우를 범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 역시 과거에 하극상을 일으켜 정권을 잡았던 자신들의 선배들이 전혀 처벌받지 않는 것을 보며 자란 요즘 젊은 세대들의 필연적인 귀결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의 근본적인 책임은 청소년들에게 모본을 보이지 못한 우리 모두에게 있다. 연대책임을 물어 아무것도 몰랐던 상급지휘관들을 문책하는 것보다는 먼저 우리사회 전체가 반성해야만 한다. 연대책임을 묻자면 해당장관과 국무총리 대통령에게도 물어야 할 텐데 그것이 사건해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난주 한국일보를 포함한 국내 일간지들을 보면서 느꼈던 아쉬움은 바로 그와 같은 문제들에 대한 지적 미흡이었다.

 한국사회의 일차원적이고도 각박한 심성을 여유있고 부드럽게 하는 한가지 방법은 이제는 선진국답게 더 이상 스포츠 승부에 목숨을 걸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스포츠 정신과는 거리가 먼 과도한 승부욕은 한국인들의 인성을 너그럽게 하는데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스포츠는 즐기면서 하는 게임일 뿐 전쟁이 아닌데도 우리들은 금메달을 못따면 죽는 줄로만 안다. 우리도 이제는 스포츠의 승부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최근 한국일보의 지적처럼 바로 박경리씨와 같은 한국문인들과 학자들의 빛나는 업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육체적인것과 물질적인것 보다 정신적인것의 가치가 더욱 소중하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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