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육성에 성공… 개도국 발전모델로/관주도·선성장론 경제커지자 한계… 문민정부 개혁추진 「한강의 기적」은 개발독재의 성과다.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고박정희전대통령은 군사독재의 레일 위에 경제개발이라는 기관차를 달리게 했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정부의 경제팀은 군사독재를 병풍삼아 과감한 경제개발정책을 소신있게 추진했다.
개발독재와 관련한 일화는 많다. H산업의 댐건설프로젝트에 대한 외자도입승인안건 심의는 개발독재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심의회의에서 한 위원이 담보부족을 이유로 외자도입에 반대했다. 의장인 부총리가 물었다.
『현지에 가 보셨습니까』
『네. 가 봤습니다』
『무엇이 있었습니까』
『물밖에 없었습니다』
『그래, 그 물이 바로 담보요』
다른 심의위원들은 아무 소리도 못했다. 안건이 자연스럽게 통과됐다. 경제기획원의 한 관계자는 『당시에는 경제의 바탕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원칙을 따졌다가는 대형투자사업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오로지 『하면된다』는 적극적 실천의지만이 통했다. 경부고속도로건설 중화학공업육성등이 개발독재의 상징이다.
경제개발은 관료가 주도했고 기업이 뒤따랐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이런 의미에서 관료자본주의다. 그 본산은 경제기획원이고 주역은 부총리였다. 정책추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파격이었고 그 기조는 「선성장, 후분배」와 대외지향적인 수출드라이브였다. 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개발독재의 청사진이자 일정표다. 문민정부가 추진중인 신경제5개년계획(93∼97년)도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자금은 미국원조자금 대일청구권자금 공공차관 상업차관등에 주로 의존했고 기술도 외국에서 도입했다. 국내에서 동원된 것은 값싼 노동력이었다. 외국의 자본과 기술에 국내의 노동력을 결합하여 만든 상품을 수출하는 식이다. 당시에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서 시행된 이런 정책기조는 무모하기 짝이 없었지만 지금은 가장 우수한 개도국경제개발모형으로 평가되고 있다. 동남아국가들은 물론 중국 베트남 러시아등 후발개도국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이 모델을 따르고 있다.
개발독재는 걸출한 경제관료들을 수없이 배출했다. 소위 박정희스쿨의 우등생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경제팀장인 부총리출신으로 고장기영 고김학렬, 남덕우 신현확씨등이 한국현대경제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지금까지 경제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관료들의 대부분이 박정희스쿨의 2세 내지는 3세인 것도 부인할 수 없다.
80년대 중반이후 성장우선론에 대한 반성이 일어났다. 분배와 균형에 대한 욕구가 커졌고 이는 경제개혁으로 이어졌다. 금융실명제 토지공개념등 개혁정책들이 이같은 분위기속에서 잉태됐다. 청와대경제수석이 전면에 나선 것도 80년대 이후다. 고김재익 사공일 문희갑 김종인씨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경제팀장으로서 개혁에 불을 지른 사람은 6공시절의 조순전부총리다. 그러나 경제개혁조치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것은 지난해 문민정부출범(이경식경제팀)이후다.
외국의 자본에 의존한 경제개발정책은 많은 시련을 안겨주기도 했다. 외채위기와 석유파동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85년 총 외채규모가 4백67억6천만달러로 국민총생산(GNP)의 51·3%로 절반을 넘어섰을 때는 외채망국론이 극에 달했다. 또 수출드라이브정책은 국민경제의 대외의존도를 심화시켰고 1, 2차 세계석유파동때는 국내경제가 극도로 불안했다. 대외지향적 개발독재의 한계가 드러나는 듯 했다. 위기극복에 많은 도움을 준 것은 뜻하지 않은 외부특수. 60년대의 월남전특수, 70년대의 중동특수, 80년대의 3저호황, 90년대(94년이후)의 신3저호황등은 한국경제를 한 단계 높여주는 역할을 했다. 한국경제10년주기설도 여기서 나온 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94년 한국경제보고서에서 『한국이 석유파동과 외채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적 기초가 탄탄했던데다 환경변화에 대처하는 정책능력이 우수했기 때문』이라고 한국형 관료자본주의를 높이 평가했다
한국경제는 지금 선진국문턱에 서 있다. 개발독재는 한국경제를 선진국문턱까지는 끌고 왔지만 선진국권으로 진입시키는데는 한계가 있다. 관주도의 틀을 발전적으로 청산하고 민주도의 선진형 자본주의로 나가야 할 시점이다. 문민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실명제 행정규제완화등 경제개혁도 이의 일환이다.【이백만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