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 “안보위협” 대폭개각 고려/하원선 내각불신임 토의 공세/달러환전 인파 등 경제 극도 혼란 루블화의 대폭락사태가 러시아정국을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가고 있다.
보리스 옐친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토록 명령하는가 하면 그 책임을 물어 세르게이 두비딘재무장관서리를 해임하고 하원에 빅토르 게라센코중앙은행총재의 해임안을 제출하는등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원인 국가두마는 오는21일 내각불신임안을 토의하기로 결정해 루블화 폭락사태는 급기야 정치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올 연초부터 연일 최저치를 경신하던 루블화는 지난 11일 하루 하락폭으로는 사상최대치인 8백45루블이 떨어져 달러당 3천9백26루블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론 중앙은행의 개입으로 루블화는 약간 반등하고 있지만 통화혼란은 쉽게 진정될 것같지가 않다.
이번 루블화 폭락사태로 모스크바등 주요도시에선 루블화대신 현물을 보유하려는 사람들이 상점마다 장사진을 치고 있다. 또 루블화영향권에 있는 구소련권 각공화국들도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지난 11일 루블화가치가 20%가량 떨어진 후 러시아화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즈베크와 그루지아공화국은 큰 충격을 받았다. 비교적 안정된 통화체제를 갖고 있는 몰도바와 벨로루시,우크라이나공화국도 자국경제가 타격받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루블화를 경화처럼 취급하고 있는 이들 구소련권국가에서는 며칠전부터 루블화를 달러화나 마르크화로 교환하려는 사람들로 은행마다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크렘린궁은 이번 사태를 불순세력이 경제불안을 야기시켜 국민들이 현정권을 불신토록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게라센코총재는 루블화를 방어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음을 자인하면서도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투기적 외환거래자들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하원인 국가두마는 기본적으로 현사태는 체르노미르딘총리 내각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정부불신임안을 정식의제로 상정하는등 옐친에 대한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현재 정부불신임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의회내 각 정파의 이해관계등을 고려해볼 때 그다지 높지는 않은 것 같다. 의회의 대다수 정파는 내각불신임안보다 내년말로 예정되어 있는 의회선거를 96년6월 대통령선거와 동시에 실시하자는 이반 리브킨하원의장의 최근 정치중재안에 심정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반옐친세력들은 의회가 대통령과 정면충돌할 경우 칼자루를 쥐고 있는 옐친쪽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는것 같다. 따라서 정부불신임안의 상정은 옐친을 흠집내기 위한 정치공세의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
예기치 않던 상황으로 수세에 몰리게 된 옐친진영은 개각을 통해 정국을 돌파한다는 수순을 밟으려고 하고 있다. 옐친은 특히 반옐친세력의 공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자신의 반대세력을 중용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 언론에는 유리 스코코프전안보위원회서기의 등용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스코코프는 지난해 옐친의 비상대권선언에 반대했던 인물로 중도보수세력의 중심인물이며 공산당의 호감을 사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경제개혁의 취약성과 루블화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상실등 정국을 불안하게 하는 각종 요인이 잠재해 있는 현 상황에서 이같은 정치적 포석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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