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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물나는 정치판”/정광철 정치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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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물나는 정치판”/정광철 정치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4.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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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양산. 고리 원자력 발전소가 눈앞에 보이는 해변마을. 포철회장과 민자당최고위원을 지낸 박태준씨의 고향이다. 동네사람들은 박씨 생가를 「부잣집」이라 부른다. 고유명사에 가깝지만 은근히 경원시하는 분위기가 풍긴다. 국민학교시절 고향을 떠났던 박씨에겐 당연한 대접인지도 모른다. 동네주민들에게 양말 한 켤레 돌리지 않을 정도로 박씨는 정치에 무관심했다. 81년 신군부가 정권을 잡은 직후인 11대때 처음 국회에 발을 들여놓은 박씨는 화려하게 정치생활을 시작했다. 전국구 초선임에도 불구하고 선망의 대상인 국회재무위원장을 맡았다. 마침 박씨는 부친상을 당했다. 당시 박씨집 인근도로 2는 주차행렬로 대혼잡을 빚었다. 부산 마산 울산지역의 꽃이 동났다는 풍문도 돌았다. 재무위원들은 서울에서 단체로 비행기를 타고 내려와 조문했다. 그러나 이때도 박씨는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막강한 포철회장이었다.

 10여년뒤인 92년 초. 총선을 몇달 앞둔 시점. 정권을 가름하는 대선을 본격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민자당 최고위원인 박씨의 집무실은 내로라하는 정치인들로 항상 북적였다. 당시 최고의 화제는 역시 여권의 갈길이었다. 포철회장이기만 했던 박씨는 어느덧 정치인이 됐다.

 다시 3년이 지난 94년 10월. 모친상을 당한 박씨는 초라하게 돌아왔다. 그는 더이상 포철회장도 정치인도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왜소하게 만든 것은 그의 사람들이었다. 한때 「TJ계」를 자처하던 많은 정치인들은 꼬리를 감췄다. 최소한 눈치를 살폈다. 비서관을 통해 부의를 표시했다가 여론이 나빠지자 뒤늦게 문상한 의원도 있다.

 정치에 대한 박씨의 요즘 생각을 측근들은 『신물이 난다』는 말로 표현한다. 그의 이같은 감회는 정세오판에 대한 자책일 수도 있고 냉혹한 정치현실을 꼬집는 일침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박씨에게 「신물」을 안겨준 요인은 정치자체라기 보다는 정치인일 것으로 보인다. 평생 쇠녹이는 일에 전념해온 박씨는 사람녹이는 일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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