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들어선 새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작업이 부패의 척결이었다. 이 작업은 사정과 개혁의 구호아래 꾸준히 진척되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고 따라서 많은 갈채를 받았다. 사정작업이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공직사회의 부패가 정치권이나 고위 공직사회같은 특정부분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전반에 확산되어 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도 크게 주의하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최근 이상하게도 빈발하는 대형사건들을 볼 때 우리 사회의 부패문제는 결코 특정부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의심을 짙게 한다.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되었던 많은 사람들이 부끄러워하기에 앞서 무엇인가 좀 억울하다는 인상을 풍겼고 심지어는 상상을 절하는 엽기적 범행의 주인공들조차 사회에 대해 손가락질하는 뻔뻔한 용기를 보일 수 있었다는 점은 올바로 굴러가는 사회에서는 감히 생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죄없는 자만이 돌을 던지라」는 외침은 굳이 성인이 나서지 않아도 죄인 스스로 외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부패라고 하면 특정 정치인이나 공직자의 전유물로 보던 사고습관에 젖은 사람들의 시각에서 볼 때 총체적, 또는 국민적 부패라는 말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아무런 죄의식없이 행해오던 관행적 행동들의 상당부분이 도덕적 또는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따라서 모두가 죄인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충격적인 일일지라도 그 점에 대해서 아무도 부인하거나 외면하기 어렵게 된 것이 현실이다.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패현상은 그동안 정치권력이 국민적 정당성을 결여한채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과 직결되는 것이다. 결여된 정당성과 이 점에서 연유하는 부족한 충성심은 물질적 보상을 통해 보충되었고 그 보상에 필요한 자원은 법과 도덕을 벗어난 방식으로 마련되었다. 그러한 관행이 40년 넘게 진행되는 동안 법과 도덕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게 되어 불법이나 편법적 행동을 규정할 기준 자체가 허물어져 버렸다. 누가 누구를 크게 나무랄 수 없는 상황에서 편법을 행하지 못해 뒤떨어진 사람은 불법이나 탈법을 행할 수도 있다는 묘한 논리가 나왔고 이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논리는 쉽게 만들어지기 어려웠다.
문제는 개인적 습관과 사회적 관행으로 굳어진 비리가 정치가 바로 잡히고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루 아침에 고쳐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비리와 부패의 구조를 방치해 둘 수도 없다. 국민적 정당성 위에 서는 민주주의는 사회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공권력의 개입을 법적 절차를 통해서만 하고 아예 그것을 최소화하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정치체제이다. 이러한 이상은 사회생활에 관련된 많은 문제가 사회 안에서 자율적으로 처리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유나 원인이야 어찌되었든 사회가 그러한 능력을 갖지 못한다면 문민정부의 이상은 헛된 기대로 끝날 공산이 크다. 질서를 원한다면 보다 강력한 공권력의 개입과 여기에서 연유하는 권위주의가 증가할 것이고 그렇게라도 질서를 마련하지 못하면 사회는 안으로부터 붕괴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쪽도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겪어온 진퇴량난의 고민을 이제는 우리 사회 스스로가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교통경찰이 있으면 비교적 수월히 지날 수 있는 교차로가 경찰만 없으면 아무도 지나지 못하게 막히는 거리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사회현실을 대단히 잘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사회는 분명히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 각자의 도덕적 각성이 중요하고 이런 의미에서 「명심보감」을 읽히는 일이 중요할지 모른다. 그런데 사람들이 옳고 그른 일을 구별할 지능이 부족해서 이러한 사회적 딜레마의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개인들을 상대로 한 도덕교육 강화론은 별로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법가적 대응방식이 이미 자유를 맛본 국민들로부터 크게 호응받을 것으로 보이지도 않고 이미 확산된 병소를 모두 효과적으로 치료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시민적 자유를 유지하면서 부패된 사회를 고쳐나갈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은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 작업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못하고 지나칠 수도 있다. 못 한다면 우리는 다시 3류국가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도덕적 개혁없이는 더 이상의 발전은 없고 그리되면 현상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지금까지 역사상 지도적 지위를 차지한 국가들은 그 어려운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국가들이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제 정부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사회 내에서 누군가가 스스로 나서야 할 때 라고 생각된다. 국민과 사회를 썩을 수 없는 불변의 초월적 실체라고 보는 이상론을 이제는 과감히 버릴 때가 되었다. 사실 국민과 사회가 썩게 되면 그것은 정말로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도자나 공직자가 썩으면 바꾸면 되지만 국민과 사회가 썩으면 바꿀 수도 없는 일 아닌가.<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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