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때든 무슨 명절때든 어디 내려갈 곳이 없는게 서울 사람이다. 추석연휴에 텅빈 듯한 서울 거리를 지나가면서『이게 서울 사람의 특권이지』하는 우스운 생각도 했으나 어렸을 적에는 친가건 외가건 일가친척이 모두 서울 사는 것이 아쉬울 때가 많았다. 이런 기분은 내 친구 송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송과 나는 4·19나던 해 국민학교를 졸업하면서 헤어졌다가 30여년이 지난 후에 다시 만나 요즈음은 한달에 서너번씩은 얼굴을 보며 지낸다. 송과 나는 국민학교 6년동안 꼬박 한반에서 공부했고 돈암동에서 을지로 4가까지 함께 전차를 타고 다녔었다.
어렸을 때 헤어졌기 때문일까, 만나면 우리는 국민학교 시절이었던 50년대 서울 얘기를 자주한다. 서울에 나서 서울에서 자랐으니 서울이 분명 고향이건만 살벌해지기만 해온 고향에 살면서 어디 『고향에 가보지』못한 까닭에 자꾸 자라던 시절의 모습만 그리는가 보다.
성신여대에서 고려대학쪽으로 넘어가는 언덕에 내가 태어난 집이 아직도 있다. 몇년 전 별러서 그곳에 가본 적이 있는데 남의 집 안을 기웃거리는 것도 오해를 받을 것같고 사실 이렇다 할 감회도 없어 도망치듯 그자리를 떠났었다. 추억을 확인하려다가 실망하고 나서는 이젠 그런 일도 겁나서 못하고 있다.
유난히 혹심했던 여름중에 큰 일 하나를 끝내고 숨좀 돌리자 그동안 상자에 담아 벽장에 깊이 넣어 두었던 오래된 책들을 꺼내 보았다. 당장 볼 필요가 없는 책, 그냥 보관만 해두려고 생각했던 책들 중에 안수길의 「제2의 청춘」이란 소설이 눈에 띈다. 첫장 첫줄에『돈암동, 미아리요』라고 써 있다. 을지로에서 떠나는 버스의 차장이 외치는 소리다. 그 구절 하나에 갑자기 나와 송이 어린시절 지나다녔던 서울의 도시모습이 물씬 느껴지는 것 같았다.
큰것이나 발견한듯 김내성의 「백조의 곡」, 정비석의 「산유화」같은 50년대의 다른 대중소설책들도 마저 꺼내어 소설 내용은 읽지 않고 서울거리의 풍경을 묘사한 부분만을 여기저기 훑어보았다.<조성진 오페라 연출가>조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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