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원주의 박경리씨 댁 뜰에서 열렸던 「토지」 완간 기념 잔치에는 문화계 인사들 이외에 색다른 손님들이 참석했다. 「토지」 완간 기념 세미나와 잔치비용을 부담한 현대그룹의 정주영명예회장,작가가 원주 시민임을 자랑스러워하는 김대종원주시장,「토지」의 무대인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서 올라온 조선호악양면장등 주민 10여명이 그들이다. 그들은 문화의 토양이 폭넓게 두터워지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문화행사 비용을 기꺼이 부담하는 기업, 예술가가 자기 고장에 살면서 어떤 작품을 남겼다는 사실에 긍지를 느끼는 시민과 관료, 작가가 자기 고장을 작품의 무대로 삼았다는 것을 기뻐하는 주민들… 그들은 문화인들 만으로 키울 수 없는 문화의 뿌리를 튼튼하게 키워갈 토양이다.
꽃다발과 감 한 상자를 선물로 들고 온 평사리 사람들의 축하는 특히 보기 좋았다. 그들은 「토지」의 인물들―서희 길상 봉선 월선 용이를 잘 아는 이웃일 뿐 아니라 작가의 고향 사람처럼, 아니 일가 친척처럼 보였다. 그들은 작가가 충무 태생이 아니고, 악양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했다.
60년대말 「토지」를 구상중이던 박경리씨는 섬진강을 따라 가다가 악양면의 지세를 보고 그곳을 작품의 무대로 정했을 뿐, 작품을 끝낼때까지 그곳에 가본적이 없다. 그가 악양 땅을 밟은 것은 최근 「토지」완간 기념 프로를 제작하는 방송팀과 함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일행은 악양으로 들어가면서 이상한 흥분을 느꼈다. 험준한 지리산 자락이 삼면을 둘러 싸고, 한면이 섬진강으로 열려 있는 그 넓은 평야에는 우리를 압도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처음 가본 내 작품의 무대에서 내 가슴은 떨렸다. 평사리 사람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논에서 일하던 농부도 달려 왔다. 그들은 나에게 집을 한채 지어줄테니 평사리에 와서 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날 원주의 잔치에서는 박경리씨 댁을 「박경리 공원」으로 보존하게 될것이라는 반가운 소식도 들렸다. 원주시 단구동에 있는 7백평짜리 그의 집은 택지개발 부지에 편입되어 헐릴 위기에 놓여 있었는데, 『명작의 산실을 보존해야 한다』는 원주지방 문화인들과 시민들의 건의를 토개공에서 받아들여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라는 소식이었다. 3백여명의 축하 손님이 마당 가득히 잔치상을 받은 그날, 그의 집은 이미 박경리 공원이 되었다.
이 모든 문화 현상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작가의 생에 대한 세상의 감동이 큰 몫을 했다. 26년이라는 긴 세월을 한 작품과 맞서 치열하게 싸워온 작가정신,환경보호와 생명운동에 대한 헌신과 실천,물질에 대한 소유와 소비가 절제된 소박한 삶을 통해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날 잔치는 「토지」완간을 빌려 우리 시대가 그에게 바치는 사랑과 존경의 잔치였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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