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철엔 아직도 절대적인 애정/“기소유예땐 외국서 신병치료” 1년7개월여의 해외유랑생활도중 귀국한 박태준전포철회장은『나는 죄인』이라는 말을 되뇌었다. 모친을 임종하지 못한 자신을 스스로 책망하는 말이지만 그 속에는 정치에 대한 깊은 회한이 묻어있는것 같았다. 박씨는 심경을 묻는 기자들에게『돌이킬 수 없는 불효를 저지른 처지에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라며 언급을 피했다. 그러나 할 말이 없을 리가 없다. 다만『정치는 생각하기도 싫다』는 것이 측근들에게 밝힌 그의 심중이다.
박씨는 귀국직후 김해공항에서 생가로 향하는 승용차안에서 보좌관 조용경씨로부터 상가에 정치부기자들이 많이 와있다는 보고를 받고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박씨는『내가 정치를 떠난게 언제인데…』라며 『정치는 다 잊었는데 왜 정치부기자들이 와있지』라고 반문했다.
박씨가 일본에 머물고있던 기간중 그는 정치권 인사들과의 만남을 철저히 피했다. 가깝게 지내던 정치권인사들이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도 극구 사절했다. 만날 경우 당사자가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때문이기도 했지만 정치와의 인연을 끊겠다는 강한 의사표시였다는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반면 그는 아직도 포철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애정을 감추지 않고있다. 정치를 잊고 본업인「철의사나이」로 돌아간 셈이다. 친척의 부축을 받아야 할 정도로 기력이 쇠진해 있던 박씨는 9일 저녁 김만제포철회장의 조문을 받자 갑자기 활기를 되찾았다. 빈소옆 마당에서 김회장과 포철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박씨는 간간이 밝게 웃기도 했다. 포철의 베트남 진출을 화제로 삼던 박씨는『일본에서 매달 철강계라는 잡지를 구독해 포철 사정을 잘 안다』고 말했다.이제는 외국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조언까지 덧붙였다.
최근 일본에서 박씨를 만났던 한 측근인사는 포철에 대한 험담을 했다가 박씨로부터 혼쭐이 났다고 한다.『포철이 잘못 됐으면 좋겠다』는 이 측근의 말에 박씨는『그런 얘기를 하려면 다시는 내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호되게 질책했다는 후문이다. 박씨는『포철은 내 생명』이라며 『포철을 망치는 놈이 있으면 멱살을 잡고 용광로에 뛰어들겠다』고 흥분하기도 했다.
타의에 의해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던 박씨는 이제 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는 듯하다. 일본에 있는 동안 그는 정치에 대한 배신감을 넘어『인간이 무섭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조문을 둘러싼 일부 정치인들의 눈치보기가 박씨에게 그같은 생각을 더욱 굳히는 계기로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박씨는 장례를 마치고 오는 14일께 서울로 올라갈 예정이다. 자신에 대한 사법처리가 어떻게 마무리되든 앞으로 정치는 결코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측근들은 전하고있다. 기소유예가 될 경우 신병치료를 위해 당분간 외국에 체류하는 계획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인이 아닌 포철과 포항공대의 설립자로 기억되는 것이 그의 소망인 것 같다.【양산=정광철기자】
◎박태준씨 상가 표정/노태우씨 문상 「20분간의 만남」/“고생많았다” 위로… 「오해」언급도/조문객 늘어… 「정치권화해」화제
10일 박태준전포철회장의 상가에는 노태우전대통령 이춘구국회부의장 이한동민자당총무등 정치인을 비롯한 많은 조문객이 줄을 이었다. 특히 발인을 하루 앞둔데다 상가의 썰렁한 장면이 보도되면서 「눈치조문」에 대한 여론때문인지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민정계 의원들의 발길이 잦았다. 이날은 마침 2년전 대선당시 민자당의 김영삼후보와 박태준최고위원의 결별을 초래한 「광양담판」이 있었던 날이어서 조문을 계기로 한 정치권의 화해가 자연스럽게 화제에 올랐다.
○…노전대통령은 이날 상오7시 항공편으로 김포를 출발, 8시50분께 상가에 도착했다. 정해창전청와대비서실장을 대동한 노전대통령은 분향한 뒤 박씨에게 『그동안 해외에서 고생 많았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방으로 자리를 옮긴 두 사람은 박씨 모친과 외국정치인들을 화제로 20여분간 대화를 나눴다.
노전대통령은 먼저 『여러가지 마음에 담고 있던 것이 시간과 상승작용해서…』라며 서로간의 「오해」를 지칭하는 듯한 언급을 한 뒤 『옛날 이룩했던 큰 일에 대한 보람을 찾으셔야지요』라고 위로했다. 노전대통령이 『그동안 외롭게 지냈을 것』이라며 『이것저것 마음대로 안되고…』라고 말을 잇자 박씨는 『일본친구들이 여러가지로 많이 도와주었다』고 답했다. 이어 두사람은 후쿠다전일본총리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9시10분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노전대통령은 대문밖까지 따라나온 박씨의 전송을 받고 곧바로 서울로 향했다.
○…이날 빈소를 찾은 정치인들은 전날까지만 해도 조문만 마친 뒤 총총히 상가를 나섰던 것과는 달리 상당히 오랫동안 빈소를 지켰다. 하오4시께 조문한 이한동총무는 장영철 최재욱 강재섭 김길홍 정창현의원등과 함께 소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곧이어 이춘구부의장 김용태의원등도 상가를 찾아 이들과 어울렸다. 마침 비슷한 시간에 상가에 도착한 유학성 권정달전의원등도 오랜만에 자리를 함께 했다. 이들외에도 박준규전국회의장, 민자당의 김영구 곽정출 김정남 이웅희 이상득 허화평의원, 무소속의 이자헌의원, 새한국당의 이종찬의원등도 조문했다.
한편 이날 앨 고어미국부통령은 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조화를 전했다. 후쿠다전일본총리와 야마시타 신타로 주한일본대사도 조화를 보냈다. 앨 고어부통령의 부친은 상원의원으로 박씨와 오랜 친분을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조석래효성그룹회장등 경제인들도 직접 문상했다.【양산=정광철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