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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전쟁시대의 리더십문제/김경원 칼럼(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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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전쟁시대의 리더십문제/김경원 칼럼(화요세평)

입력
1994.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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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리더십문제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같다. 과거에는 정통성문제가 있었지만 그런대로 국사를 이끌어 가는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는데 지금은 정통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가운영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사실은 오늘날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리더십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것같다. 특히 서방 민주국가들의 경우에는 지도자에 대한 지지율이 40%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고 영국은 집권당 지지율이 25%밖에 안 되어 다음 선거에서 노동당이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도 11월8일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40년만에 처음으로 하원의 과반수를 차지할 가능성이 있는데 만일 그렇게 된다면 클린턴대통령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입장에 놓이게 된다.

 일본은 오랜 자민당체제가 무너지면서 사회당총리가 들어앉았지만 이번 유엔총회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무라야마총리보다 외무부 관리들이 더 힘이 있는 것같이 보인다. 러시아는 1년 전에 옐친이 의사당을 탱크로 공격한 후 정국이 좀 안정되는 것같이 보이기도 했으나 최근 아이슬란드공항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면 리더십 문제가 역시 심각한 것 같다. 중국의 경우에는 누가 진짜 리더인지 분명하지 않을 정도다. 등소평 강택민, 그리고 다른 인물들 간의 역학관계도 투명하지 않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학관계도 유동적인 것같다.

 그러면 이처럼 많은 나라들이 모두 리더십문제로 신음하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우선 냉전이 종식되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냉전은 「외부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지도자가 국민의 단합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주었다. 그런데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냉전시대의 「외부위협」이 사라짐으로써 국민의 개인적 요구와 집단이익 및 지역감정등을 억제하는데 필요한 정치적 명분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따라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고 보아야 한다.

 둘째로 이념의 시대가 끝났다는 점도 중요하다.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국가의 경우에는 지도자와 국민이 동일한 가치관을 공유하게 되므로 리더십의 역할은 한결 단순하다. 그러나 탈리념시대에는 사회 전체가 추구하는 가치나 목적을 자동적으로 전제할 수 없다. 물론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이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엄격한 뜻에서 자유민주주의는 국민 각자가 스스로의 가치와 이익을 추구할 수 있도록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공동목표가 자동적으로 전제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정보화현상도 리더십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역사적으로 정부는 많은 정보를 독점해 왔다. 그리고 정보의 독점은 정부에게 엄청난 힘을 주었다. 그러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정부의 정보독점은 급격하게 축소되어 가고 있다. 첫째 정치민주화는 국민의 알 권리를 놀라운 속도로 확대시켜 주고 있고, 둘째 정보기술의 혁명적 발전은 정보의 확산을 막는 것을 실제로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과 일반시민이 동일한 정보를 갖게 된 상태에서는 대통령은 더 이상 국민의 관습 또는 카리스마에 의한 복종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리더십은 필요하다. 오히려 항해하는 선박은 상황이 어려울수록 더욱 선장의 역할을 필요로 하게 된다. 탈냉전시대에 효과적인 리더십을 회복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새 시대의 지도자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냉전시대가 그리워서 「외부위협」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도 안되고 만들 수도 없으며 국민총화를 자동적으로 손쉽게 유도하기 위해 그릇된 이념이나 새로운 우상을 세워도 안된다. 그리고 정보의 독점은 더욱 생각할 수조차 없다.

 다음 탈냉전시대의 지도자는 존재하지 않는 「외부위협」이 아닌 실제 존재하는 위협들, 예를 들면 환경파괴, 국제경쟁, 현대사회의 인간성상실등의 당면한 위협에 대한 뚜렷한 인식을 갖고 있어야 하며 이러한 인식을 국민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설득력과 호소력도 겸비해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정책비전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실현가능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막연하게 듣기 좋은 이상들을 나열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안된다. 특정한 기간내에 성취할 수 있는 목표들을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지도자는 또한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매스컴의 헤드라인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 필요가 있다. 정보화시대에 매스컴은 매일 시시각각으로 충격적인 뉴스들을 홍수처럼 흘려보낸다. 만일 지도자가 그 자신의 정책목표에 집중하지 못하고 매일 터져 나오는 뉴스, 시시각각 변하는 「여론」, 소위 「새로운 정보」등에 신경을 쓰다보면 정책은 일관성을 잃게 되고 지도자는 방향감각을 상실하기 쉽다. 중요한 것은 순간마다의 뉴스가 아니라 일정한 시간이 흘렀을 때 남게 되는 「결과」다.

 끝으로 리더십의 질은 리더에게만 달린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질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훌륭한 선장도 선원들의 태도와 능력에 따라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탈냉전시대의 리더십 역할도 결국은 각 나라 국민의 질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사회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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