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내무 등 민주계 조문 주목/박씨 “임종못한 불효자” 눈시울 붉혀/민정계의원 발걸음 뜸해 “권력무상” 민자당최고위원을 지낸 박태준전포철회장이 9일 1년7개월간의 해외유랑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했다. 박씨의 귀국은 물론 모친상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정치권에 적지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문을 둘러싼 현역 정치인의 눈치보기는 「정치무상」을 연상시킴과 동시에 우리 정치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또 박씨의 귀국은 현정부의 구여권 끌어안기를 촉발하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도 적지않아 「조문정치」의 향방이 주목되고 있다.
○…박씨는 이날 하오4시10분께 경남 양산군 생가에 도착했다. 집앞에 마중나간 동생등 가족들과 인사를 나눈 박씨는 곧바로 모친 김소순씨의 시신이 안치된 안방으로 가 예를 표한뒤 『불효자가 왔다』며 오열했다. 박씨 가족들은 입관을 마쳤지만 박씨가 모친의 얼굴을 볼수 있도록 덮개를 완전히 닫지는 않았었다. 여동생들이 『어머니가 그렇게도 오빠를 보고싶어했는데…』라며 오열하자 박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흐느꼈다.
박씨는 염을 마친 뒤 앞마당에 마련된 빈소로 나와 태화 태선씨등 두 동생 및 매제들과 함께 조문객을 맞았다. 초췌한 모습의 박씨는 왼손에 손수건을 든채 연신 눈물을 훔쳤다. 박씨는 보도진에게 『나는 죄가 많은 사람이다. 어머님이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폐만 끼치고 임종도 하지 못한 불효자식이 무슨 말을 하겠느냐』면서 『아무 말도 못하는 심경을 기자 여러분이 이해해 달라』고 심경의 일단을 밝혔다.
○…이에 앞서 박씨는 하오3시께 부인 장옥자씨와 함께 김해공항을 통해 입국, 마중나온 둘째딸 부부등과 승용차편으로 곧바로 생가로 출발했다. 일본 후쿠오카발 대한항공편을 타고온 박씨는 검은 색 양복에 검은 색 중절모를 쓰고 있었으며 부인 장씨도 검은 색 투피스를 입고 있었으나 다소 초췌한 모습이었다. 박씨는 취재진에게 일체 함구한채 황급히 공항을 떠났다. 이날 공항에는 둘째딸 부부외에도 박씨 모친상의 호상을 맡고 있는 황경로전포철회장과 민자당최고위원재직시 보좌관을 지낸 조용경씨등 5명이 출영했다.
○…일요일인데다 박씨가 귀국했기 때문인지 상가에는 전날보다 많은 조문객이 몰렸으나 현역의원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반면 최형우내무장관 문정수민자당사무총장등 민주계 실세들이 이날 상가를 찾아 박씨 및 구여권세력 끌어안기가 본격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자아냈다.
최장관은 박씨 도착후 1시간가량 지난 뒤 상가에 들어섰다. 박씨는 자신의 모친과 같은 고향출신인 최장관에게 『우리 어머니께서 최장관을 좋아하셨다』고 인사말을 건넸고 최장관은 『죄송합니다』라고 답했다. 최장관은 조문후 『박최고위원은 과거 각별히 모신 고향선배』라며 『꼭 조문을 해야할 곳이어서 왔을 뿐 』이라고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최장관은 또 『나는 공인으로 온 것이 아니라 사인으로 온 것』이라며 『상가에서 정치적인 얘기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장관이 도착하기 10여분전 박철언전의원도 상가를 찾았으나 두사람은 서로 다른 장소에 있어 조우하지는 못했다. 박씨는 박전의원으로부터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으셨느냐』는 인사말을 듣고 『박의원이야말로 고생했다』고 말했다.
상오11시30분께 조문을 한 문정수사무총장은 『당직자로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개인자격으로 조문왔다』면서 『인간적인 정으로 마땅히 예의를 차려야하는 것아니냐』며 역시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문총장은 『김영삼대통령이 조화를 보낸 것을 두고 정치적 사면이니 뭐니 말들이 많으나 그것은 순수한 조의표명으로 보는게 맞다』고 말했다.
○…이날 상가에는 정석모 신상식 박재홍 박준병 서정화 이해구 유흥수 유수호 조영장 안찬희 박범진의원 권오태 김정례민자당고문등이 조문했다. 민주당의원으로는 유준상최고위원이 유일하게 상가를 찾았다. 하오1시께는 전두환전대통령을 대신해 민정기비서관이 빈소를 찾았는데 민비서관은 『전전대통령이 바쁜 일정으로 직접 문상할 수 없기 때문에 대신 조의를 표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한편 노태우전대통령은 10일 상오 직접 조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김수환추기경 월하조계종정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 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전일본총리등은 조화를 보냈다.
○…하오7시20분께는 김만제포철회장이 문상했다. 박씨는 환담을 위해 방으로 들어가라는 측근들의 권유에 『우리는 정치적인 얘기를 하지않으니 괜찮다』며 빈소옆 마당에서 포철경영과 세계철강업계등을 화제로 20여분간 대화를 나눴다. 박씨는 『나는 정신없이 키우기만 했지만 지키기가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며 『철강업계 잡지를 매달 구독해 포철의 상황을 잘 알고있다』고 말했다.
○…이날까지 조문을 다녀간 사람들은 모두 8백여명으로 박씨가 평생 몸담았던 포항제철의 부하직원이 가장 많았다. 그러나 세상인심을 말해주듯 박씨와 함께 정치노선을 걸었던 정치인들의 모습은 쉽게 눈에 띄지않았다. 빈소에는 과거 포철중역 50여명이 박씨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중역은 『과거 회장님집에서 살다시피 했던 민정계의원들이 얼굴도 안비치다니 배신감마저 든다』며 권력의 무상함을 한탄했다.
박씨가 지난 81년 포철회장과 국회재무위원장을 겸임하고 있을 당시 부친상을 당했을때는 몰려드는 문상객때문에 차량행렬이 2나 이어졌고 마을에는 차를 세울데조차 없었으나 이번에는 당시 문상객의 20분의1에도 미치지못한다는 것. 【양산·부산=정광철·한창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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