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 지나친 관심은 잘못/박태준씨문제 지금은 말안해 김영삼대통령은 8일 출입기자들과 1시간 40분동안 오찬간담회를 갖고 오랜만에 국정현안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김대통령이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기는 지난 6월 러시아및 우즈베키스탄방문때 이후 4개월만의 일로 그동안에는 김일성사망과 여름가뭄, 하계휴가등으로 갖지 못했다.
이때문에 김대통령은 「많은 말을 준비」한듯 했으나 역시 당정개편과 지자제선거, 재벌문제등 국내정치와 관련된 미묘한 사안에 대해서는 오히려 말을 아꼈다. 김대통령은 특히 오찬이 끝난 직후 간담회에 들어가기전 『인간적인 면에서 평소의 생각을 얘기하겠다』고 서두를 꺼낸후 취임후 1년7개월동안의 국정운영에 관한 소감을 25분동안 피력했다.
김대통령은 우선 어둡던 야당시절을 술회한 후 그동안 단행한 군개혁, 금융실명제, 정치자금불수수선언, 정치개혁, 공직자재산공개등 다섯가지 성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데 잊어버리는 사람이 참 많은 것같다』고 웃음속에 아쉬움을 솔직히 토로했다.
김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최근의 잇단 「사건」을 의식한 듯 『불행한 일이지만 군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겠다』 『몇가지 좋지 않은 일들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해야겠다』고 굳은 표정으로 다짐했는데 바로 이 대목이 이날 하고 싶은 말인것 같기도 했다.
○남북체제경쟁은 끝나
―현재의 남북관계로 보아 내년의 광복 50주년도 대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맞게 될 전망인데 어떤 구상이 있는지요.
『남북간의 체제경쟁은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남한교란과 적화통일망상을 포기해야 합니다. 북한은 가능성도 없는 일에 외화를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남북대화가 4백여회 있었지만 건설적인 대화는 거의 없었고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나 비핵화공동선언등 몇가지 중요한 약속도 전혀 안지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북한에 대해 우위에 있는만큼 의연하고 당당한 입장에서 임할 생각입니다』
―한미국방장관회담에서 북한의 가시적인 핵개발포기 조치가 없을 경우 팀스피리트훈련을 재개키로 했는데.
『원래 우리의 원칙이 북한은 핵을 반개를 가져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8·15경축사에서 밝힌대로 북한의 핵투명성이 보장되면 경수로건설에 자본및 기술지원을 하는등 응분의 조치를 취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팀스피리트훈련은 재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지킬 자체의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북한 핵문제가 경협등 남북관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데 경협을 우선 재개할 생각은 없습니까.
『이 시점에서 지나치게 남북경협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잘못된 시각입니다. 미국과 일본이 빨리 대북경협을 하려고 하니 우리도 서둘러야 한다는 얘기가 있지만 미일이 이익이 없는데 서두를 이유도 없고 서둘지도 않습니다. 핵문제가 해결 안되면 경협도 안됩니다. 제일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어야 다음 문제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북미협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합의가 안될 경우에는 어떻게 됩니까.
○한미협력 큰 원칙 불변
『아직 아무런 합의를 보지 못하고 서로 의견교환만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받았습니다. 북미간에 합의가 안되면 안보리에 회부할 수밖에 없다는 차원에서 미국과 얘기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미간에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고 허점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큰 원칙을 지켜야지 원칙이 변하면 안됩니다』
―지자제선거에서 서울시장후보는 언제쯤 어떤 사람을 내세울 것인지요.
『깨끗한 선거를 위한 법률까지 만들어 놓고 선거분위기를 조기에 조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연말께 대폭적인 당정개편을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습니다.
『그동안 이상한 체제에 장기간 살아 와 당과 정부에서 이견들이 나오면 혼선이라는 인상을 주는 모양인데 다양한 이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하나로 결정되면 일관성있게 밀고 나가는것이 이상할게 없습니다. 이번 정기국회후 대폭개각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일본처럼 총리와 각료가 모두 물러나는 내각책임제를 너무 의식한 때문입니다. 미국같은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내각이 모두 바뀌는 일을 보았습니까. 8년, 4년도 하고 필요하면 부분적으로 1∼2명 바꾸지 않습니까』
―박태준전포철회장의 모친상가에 조화를 보내셨는데요.
『그얘기는 이 시점에서 안하는게 좋겠습니다』(웃음)
―개혁추진과정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해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인데요.
『묘한 질문이네요. (다시 웃음)답하지 않겠습니다』
○인기하락 지금이 정상
―대통령은 열심히 하는데도 인기가 떨어지는 것은 참모들이 보고를 않거나 잘되는 것만 얘기하기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김대통령은 이 질문때 다소 굳은 표정으로 있다가 상기된 표정으로 답변을 시작했다) 내 인기가 떨어졌다고 하는데 오히려 취임초의 80%니 90%니 하던게 너무 높은 것이었지요. 그런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그때 걱정하면서 빨리 떨어져야한다고 생각했어요(모두들 폭소). 반대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지금 수준이 정상입니다. 참모들이 바른 말을 안한다고 하는데 나는 전화도 많이 하고 사람도 많이 만납니다. 절대 감투는 안쓰겠다면서 바른 얘기만 해주는 대학교수등의 그룹이 여러개 있습니다. 집단적으로 문서를 작성, 이런 문제는 이렇게 하는게 좋겠다고 얘기해주는데 문서니까 말로 하기 어려운 얘기도 많습니다. 야당을 오래 했기 때문에 주변에 나와 사고가 같은 사람도 많고 이들은 듣기싫은 소리만 즐겨하는 사람들입니다(김대통령은 이부분에서 웃음을 되찾았다)』
―연말에 대폭개각은 없는 것으로 생각하면 되는지요.
『(웃으며)마음대로 해석하세요. 다만 일본식으로 생각은 하지 마세요』
―필요한 부분만 바꾸겠다는 말씀입니까.
『굳이 말하면 그렇겠지』 (김대통령은 이대목에서 말끝을 흐렸는데 전후맥락으로 보아 부분개각을 구상중이라는 인상이었다)【최규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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