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송·각종책 등 샅샅이 살펴/「교열편지」 보내기 매일 수십통씩/대통령경축사·헌법조문·장관기고문에도 “일침” 전직 국어교사 이수렬씨(66·서울 은평구 불광2동 304의 21)는 우리말과 글을 외롭게 지키는 「파수꾼」이자 언어 속의 잡초를 솎아내고 가다듬는 「정원사」이다. 47년간 국어 교사로 봉직하다 지난해 서울여고에서 정년퇴임한 이씨의 한글사랑은 남다르다.
이씨는 일간지 8개를 정독하고 책상 가득히 배달되는 잡지 사보등 각종 정기·비정기 간행물을 샅샅이 보며 국어순화작업을 하느라 하루해가 짧다. 방송뉴스도 빼놓지않고 들어 아나운서의 어투를 바로잡아 준다.
기자 논설위원등 언론인은 물론 문필을 생업으로 하는 소설가 교수 수필가등의 각종 기사와 글에서 잘못 사용된 어휘·조사·수식어등을 찾아내 빨간색 사인펜으로 교열보는 일을 천직삼아 하고 있다. 그래서 무보수 프리랜서 교열부장인 이씨로부터 따끔한「교열편지」를 받아본 사람들이 점점 늘고있다.
대통령의 취임사,신년사,경축사도 빠뜨릴 수 없는 교열대상이다. 8·15경축사에서 일본어식 어투를 발견하면 얼굴이 달아오른다고 이씨는 말한다.
지적을 해줘도 다음번 기념사에서 잘못이 되풀이 될 때는『내가 하는 일이「바닷속의 좁쌀 한 알」과 같구나』하고 낙심한다. 그러나 교열편지를 받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고맙다』는 답장이나 전화를 받으면 보람을 느낀다.
얼마전에는 김숙희교육부장관이 모신문에 기고한 글에 대해 몇군데 오류를 지적, 장관실로 편지를 보낸 뒤 장학실로부터 『훌륭한 일을 한다』는 인사를 받았다. 이씨는『나라의 얼굴인 헌법과 교육의 지표로 삼는 국민교육헌장, 국어 큰사전에도 없애야할 티가 많다』며『국민 모두가 하루 하루를 한글날로 생각해서 말과 글을 가다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헌법 제1조 2항의 규정「∼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의 영어식표현「으로부터」는「에게서」「한테서」로 바꿔야한다고 주장한다. 또 헌법 제67조 4항의「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는」도「대통령이 될 수 있는 이는」으로 바로잡아야한다고 말한다.이씨는『무심코 잘못 쓰는 말,어긋난 서술,외국어식 문투가 우리의 글과 말을 병들게 한다』고 말했다. 특히 중고교 국어교과서에 명문으로 소개되고 있는 「독립선언문」과「서유견문록」등은 대표적인 일본어투 문장이라고 강조했다.
옛날 소학교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이씨는 44년 교사가 된뒤 외솔 최현배선생의「우리말본」「한글갈」등으로 독학했다.
퇴직연금으로 살고 있는 이씨에게는 하루에도 수십통씩 보내야 하는「교열편지」의 우표값만해도 힘에 부칠 때가 있다.
이씨는 뜻을 같이하는 몇몇 사람들과 조직적으로 우표값 걱정하지 않고 전국민을 상대로 교열작업을 하는것이 여생의 꿈이다.【권혁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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