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시대를 맞아 우리의 정치상황은 그동안 많이 나아졌다. 민주대 반민주, 독재세력대 민주세력이니 하면서 숨쉴새도 없이 벌어졌던 극한대립이 사라졌다. 그리고 날이면 날마다 극렬시위로 거리에 나온 시민들이 눈과 코를 뜰 수 없었던 시절도 이제는 옛날 얘기가 되고 말았다. 권위주의 시대가 끝나면서 정치안정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문민시대가 받게 된 것이다. 그외에 사회 경제 문화등 다른분야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한마디로 각계 각층에서 피곤하던 대결의 시대가 끝나고 경쟁의 시대로 들어가는 변화의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다. 그런 변화의 물결속에서도 여전히 권위주의시대의 낡은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예외의 경우도 적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특히 우리의 의식구조가 구태의연함을 개탄하는 소리가 높다.
최근 우리는 정치자금의 여전한 여당 편중 현상을 통해 그 단면을 새삼 읽을 수 있다. 특히 지정기탁금부문에서 작년과 금년 민자당은 총 3백27억6천여만원을 받았으나 민주당이나 신민당등 야당측은 한푼도 받지 못했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국회보고자료는 상당히 충격적이다. 기업체가 대부분인 기탁자들이 여당에만 주고 야당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외면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권위주의시대에서는 상식처럼 통했기 때문에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문민시대가 정치의 정상화를 가져왔다고 기대되는 마당에서 이런 현상의 재현을 보는 우리는 솔직히 당혹과 실망을 동시에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이 여당에만 돈을 주고 야당을 기피하는 이유는 장차 있을지도 모르는 보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시대에는 실제 야당쪽에 정치자금을 주었다가 혼이 난 일이 많았다. 그러나 문민시대에 와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는 얘기는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들은 일이 없다.
그런데도 권위주의시대의 여당 일변도 편중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지난 시대의 의식구조가 바꿔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직접적인 원인을 캐보면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기업들의 생각이 옛날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돈을 내는 기탁자들의 정치를 보는 시각이 과거에 비해 별로 바뀌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여야대결이라는 정치구도가 종전대로 지속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선의의 자유경쟁을 통한 여야간의 동반자관계로 변형되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여전히 적군과 아군으로 편이 갈라져 죽기 아니면 살기식으로 싸움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시각과 인식은 비단 정치자금 기탁자들만 갖고 있는게 아니다. 일반 국민들중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권은 아직도 많은 변화를 필요로 하고 있다. 여야를 가릴것 없이 서로 반성을 크게 해야 한다. 야당을 후원해도 집권세력으로부터 미움을 사지 않는다는 인식이 보편화되도록 전반적인 정치분위기의 일신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문민정치의 진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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