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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에만 지우는 정책발상/이이춘 정치부장(데스크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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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에만 지우는 정책발상/이이춘 정치부장(데스크진단)

입력
1994.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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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북구청 세금횡령사건으로 「세금도둑」에 대한 국민의 격앙된 감정이 훈훈해야 할 추석 명절을 망치고 있을 때 한 공직자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과천 정부청사에 근무하는 30대 후반의 사무관이라고 밝힌 그 공무원은 인천 북구청 세금횡령에 대한 분노어린 질책에 이어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털어 놓았다.○한공직자의 분노

 『공직을 명예로 알고 10년간 열심히 일해왔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공직이 바로 명예라는 자부심은 점차 사라지는 느낌이다. 이 느낌은 인천 북구청 세금횡령사건과는 별개이다. 세금횡령사건은 그야말로 세금도둑들에 의한 범죄행위 이지 공직수행이 아니며 나와는 무관하다. 그런데도 공직이 명예가 아닌 멍에가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동료들도 같은 생각이다.전직을 심각히 고려하고 있다. 언론은 그 책임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또 소위 복지부동은 누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는가』

 그 공무원의 물음은 책임이 바로 정부에 있는데 언론은 알고 있느냐 하는 대답까지 깔고 있는듯 했다. 사실 문민정부 들어 사정이니 재산공개니 하는 강성조치로 공직사회의 분위기는 엄청나게 위축되어 왔다. 그래서 복지부동이 생겨났고 이에 대한 질타가 잇달았지만 공직사회의 보신 분위기를 바꾸지는 못했다. 정부는 공직사회 아래 위에 팽배한 보신주의 속에서도 하위직 공무원들은 여전히 챙길것을 챙긴다고 보고 있는듯 했다. 공직사회의 윗물은 맑아졌지만 아랫물은 여전히 흐려 있다는 것이었다. 추석을 전후해 아랫물 맑기가 필요하다며 「추석선물 안주고 안받기운동」 대책회의를 열고 각종 예방책을 내 놓은 것도 이같은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여기에서 나온 대책을 일일이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회의 명칭이나 대책들이라는게 모두 60년대에 이미 효험검증을 끝낸 것들인데 높은 사람들이 물정모르고 하위 공직자 전체를 범죄시하는 발상들을 다시 내놓아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는게 그 사무관의 불만의 요지였다. 정부의 추석감찰대책 발표이후 터져나온 인천 북구청 세금횡령사건은 원천적이고 구조적 비리로서 건전한 대다수 공직자들과는 절대로 무관하다는 주장도 곁들여 있는듯 했다.

○한건주의에 집착

 실제 사정당국은 추석을 전후해 부처별로 실시한 암행감찰 결과를 이례적으로 공개했지만 그 내용은 그야말로 「훈훈한 인정가화」 만 적발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뇌물과 선물을 구별 못하지는 않을 터인데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는 한건주의에 집착, 사람과 사람사이에 오가는 정까지 사정의 덫에 건 형국이었다. 추석직전 청와대 모 수석비서관이 외국대사가 보낸 조그마한 추석선물을 받지 않고 돌려보낸 후 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진땀을 흘려 외교가의 화제가 되었던 경우도 위에만 잘 보이면 된다는 한건주의와 진배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세상사에 무감각한 정부가 최근 인천 북구청 세금횡령사건 수사가 마무리되어 가자 공직자 부정부패 근절대책의 하나로 내 놓은게 일부 민원부서 공직자의 재산등록 확대였다. 공직으로서는 최말단인 9급직까지 재산등록을 하도록 하겠다는 정부발표를 접한 순간 전화를 걸어 울분을 터뜨리던 그 사무관이 생각났다. 얼핏 보면 인천 북구청 세금횡령사건의 주범이 말단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사정당국의 이같은 발상을 이해할 수도 있다.

 ○피해는 국민들에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공직자 재산등록 확대는 그 직위에 있는 모든 공직자들이 일단 부정을 저지를 소지가 있다는 전제를 깔고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강압적인 방법에는 최소한 선량한 절대 다수 공직자들의 명예와 함께 사기를 진작시키는 방법이 선행되어야 마땅하다. 가뜩이나 사기가 땅에 떨어진 공직자들에게 의무만을 강요하는 정책발상은 그 피해를 국민들에게 지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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