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국가간의 스포츠대결을 일컬어 총성없는 전쟁이라고 한다. 그만큼 국가간의 스포츠경쟁은 민족적 자존심을 건 관심사가 된다. 그래서 다소 억설같지만 인류는 인명살상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스포츠를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얼마전 미국의 바그다드폭격을 CNN현장중계를 통해 월드컵축구관전처럼 생생히 즐겼던(?) 경험이 있는 현대인으로서는 스포츠=전쟁 논리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인류사에 나타난 전쟁치고 「정의와 평화실현」으로 위장되지 않는 전쟁은 없다. 그러나 전쟁의 결말은 비참하다. 백인종문화권에 대응한 대동아공영권건설을 내세웠던 태평양전쟁을 끝막음한 히로시마의 원폭투하가 그렇다. 순식간의 버섯구름과 함께 20만의 생령이 사라졌고 군수산업으로 번창했던 도시는 폐허와 죽음의 땅으로 돌변했다. 그후 반세기만에 거대한 일본경제력을 배경삼아 히로시마는 부활했다.
아시아인의 단합과 세계평화라는 화려한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우고 제12회 아시안게임을 개최하면서 「물과 나무의 도시」 히로시마는 인류에게 평화와 환경재생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새로운 광장으로 변모했다.
30억 아시아인들의 눈과 귀가 집중된 가운데 아키히토일본왕이 개회를 선언한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은 평화의 상징물인 비둘기 한쌍(포포와 쿠쿠)을 마스코트로 삼고 아시아의 단합을 대회주제로 내걸었다. 아시안게임의 꽃인 마라톤의 결승점은 피폭의 현장을 그대로 보존시킨 평화기념공원으로 정해졌다. 일본인 원폭희생자의 위령탑이 세워진 평화공원에는 대회기간에 억울한 생령들의 원혼을 위로하고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수만마리의 종이학이 일본 방방곡곡에서 날아들고 있다. 이래저래 히로시마의 평화공원은 매스컴의 초점으로 등장했다.
일본은 이번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을 통해 일본인이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고 2차대전의 희생자임을 대회참가국에 알리고 싶어함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같은 감정은 히로시마피폭의 잔인성에 대한 일본인들의 자연스런 정서일 수도 있다.
그런 일본인들이 유독 히로시마 피폭으로 함께 희생당한 한국인 위령탑을 평화공원내에 이전시키는 것을 한사코 반대하고 있다. 피폭자중에는 군국주의의 표상인 징용한국인들이 2만명이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숨기면서도 아시아의 단합을 외치고 싶어하는 「일본식 평화」 의 한계점이 노출된 셈이다. 피폭의 원인제공(군국주의)에 대한 철저한 반성없이 희생결과만을 따지는 일본식 평화주의는 언제 아시아의 단합을 빌미삼아 대동아공영권의 부활로 연결될지 모를 일이다.<체육부장>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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