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당국 “계좌유무는 영장없이 확인할수 있어야”/한번 영장으로 일괄추적·전산실자료 검색도 논란/재무부 “돈 빠져나간다” 난색… 정치적결단에 달려 경제팀의 경질로 비리혐의 공직자의 은행계좌 확인과 추적이 종전보다 용이해질 것인가. 아니면 실명제의 금융거래 비밀보호라는 명분에 밀리고 말 것인가.
정부는 인천 북구청 세금횡령사건을 계기로 제2개혁사정 차원에서 비리혐의 공직자의 금융거래사실 확인과 계좌추적이 용이하도록 실명제 긴급명령의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를 추진하려는 사정당국과 금융거래 비밀보장이라는 실명제 취지를 훼손할 수 없다는 재무부 입장이 현재 팽팽히 맞서 있다.
지난달 23일 청와대에서 검찰 감사원 국세청과 재무부등의 실무책임자들이 모인 가운데 열린 회의에서는 두가지 입장이 사실상 평행선을 그었을 뿐이다. 또 6일 열릴 예정이던 2차회의는 아예 오는 10일로 연기됐다. 신임 박재윤재무장관이 실무자들의 의견을 듣고 사안을 파악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해서다.
검찰등 사정당국이 추진하는 방향은 크게 두가지이다. 우선 영장없이 비리혐의 공직자의 은행계좌 존재유무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금융실명제 긴급명령 제4조는 『금융기관 종사자는 명의인의 동의없이 그 「금융거래」의 내용에 대한 정보 또는 자료를 타인에게 제공하거나 누설해서는 안된다』고 돼 있다. 그리고 그 시행령은 「금융거래」란 금융거래사실(계좌의 존재유무)과 거래내용을 포함하는 것으로 돼 있다.
지난 5월 만들어진 시행령이 이를 구체적으로 규정한 것은 시행령제정이전 검찰등 수사기관에서 『긴급명령상의 금융거래란 구체적인 거래내용만을 말하는 것이고 계좌의 존재유무는 영장없이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재무부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반대했기 때문. 이같은 논란과정에서는 이회창당시국무총리도 계좌 확인에까지 영장이 필요하다면 공직자 비리수사에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재검토를 지시했다.
그렇지만 이전총리 경질후 홍재형당시재무장관이 직접 현행 시행령내용대로 김영삼대통령의 결심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고 이어 시행령은 국무회의에서 통과됐다. 따라서 사정당국은 이번에 시행령을 개정, 영장이 필요한 것은 금융거래내용추적(계좌추적)만으로 국한하고 계좌의 존재유무는 영장없이도 확인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수사기관에서는 영장없이 계좌유무만 확인할 수 있어도 공직자비리의 원천봉쇄가 상당부분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사정당국이 추진하는 또 한가지는 영장을 한번 발부받으면 비리공직자가 「특정점포」에 갖고 있는 계좌에 들어 오고 나간 입출금 내용에 대한 일괄적인 계좌추적이 가능하도록 재무부 지침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 지금도 법원의 영장은 이것이 가능하도록 돼 있으나 각 금융기관은 재무부 지침을 내세워 일괄추적에 절대 응하지 않고 있다.
사정당국은 궁여지책으로 영장을 발부받아 아예 금융기관 본점의 전산실에 있는 전체자료를 볼 수 있는 방안까지 검토해 보았다. 실명제 긴급명령에 영장을 발부받아 「특정점포」의 계좌를 확인할 수 있게 돼 있으므로 전산실도 특정점포로 보면 된다는 논리에서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법제처는 『특정점포는 금융기관의 본점 지점 영업소만을 말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재무부가 계좌추적에 난색을 표명하는 것은 비밀보장이 무너질 경우 은행등에서 돈이 빠져나갈 것을 우려해서이고 사정당국은 실명제하에서 돈이 어디로 빠져나가겠느냐고 반박한다.
김대통령의 의중을 잘 알고 있을 박재무장관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주목되며 사정기관과 재무부가 끝내 절충점을 찾지 못하면 결국 김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최규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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