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명(50)을 넘어선 분들이 『이제 철이 들었는가 봐요』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왠지 리트머스 시험지를 내 삶에 들이대는 것 같아 가슴이 오그라질 때가 많다. 지난 주 한 언론인 선배가 회갑에 장가를 들면서 『젊을 때는 장가드는 일이 그저 철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이런 생각이 철없는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기에 무려 60년이 걸렸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는데 이런 말을 좀 더 외진 상황에서 들으면 웃음이 긴장으로 변할 때가 많다.
경기도 광주군에 성당사목관을 양로원으로 만든 곳이 있다. 도척성당의 방상복신부(51)는 5년전 이 시골성당으로 부임한 후 널따랗게 지어놓은 사목관(신부숙소)을 혼자 쓰고 있었는데 어떤 분이 어느 날 『혼자 사는 할머니를 모시지 큰 집에 왜 혼자 사느냐』고 하는 말을 듣고 사목관을 비워 양로원을 만들었던 것이다. 방신부는 이곳에 부임한 후 혼자 사는 할머니들에게 구운 김같은 것을 갖다 주면서 위로방문을 해오고 있었는데 왜 큰 사목관을 혼자 쓰느냐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철이 들어」 사목관을 할머니 양로원으로 개조했다는 것이다.
그는 교육관 아래층에 방을 하나 만들어 나왔다. 현재 15명의 오갈데 없는 할머니들이 이 사목관 양로원에 살고 있고 지금까지 6명의 장례를 치러드렸다.
모두 70이 넘은 할머니들인데 방신부의 말로는 이 할머니들의 삶이 게을렀거나 무슨 잘못이 있어 자식도 없고 재산도 없는 불쌍한 신세가 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가난과 모진 전쟁을 겪으면서 그저 그렇게 살아도 그렇게밖에 되지 못한 것 뿐이라는 것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커서는 남의 집 식모살이나 삯 일을 하다가 어떻게 시집을 갔는데 남편은 일찍 죽고 아들 하나 있는 것이 전쟁통에 죽고…. 이런 줄거리가 대부분이었다.
기회있는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평생을 배고프게 산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사목관의 할머니들은 이곳에서 세끼 밥을 제 때에 먹고 신부님 얼굴을 가끔 볼 수 있는 것에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철이 일찍 드는 사람도 있고 죽을 때까지 철이라는 것이 뭔지도 모른 채 엄벙덤벙 한 평생을 살다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우리 사회에 규모가 커진 채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철없은 사회현상들―대형범죄 교통혼잡 사회적 보호를 받아야 할 자의 방치등이 독립적인 대통령위원회 또는 국민특별위원회같은 것을 만들어 장기대책을 토론해본다면 괜찮은 대책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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