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형 신임부총리는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새 경제팀의 최우선 과제는 선진경제 개방경제로의 이행을 완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경제의 국제화를 공인받는 절차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을 위해 국내제도를 세계적 기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또 진용의 면면을 보더라도 새 경제팀은 「국제화 내각」임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경제팀의 출범과정을 지켜보면 「국제화 내각」과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는 것 같다. 홍부총리는 당초 전임부총리가 사의를 표명했을 때 재무장관으로 IMF(국제통화기금) IBRD(세계은행) 연차총회에 참석할 한국대표단을 이끌고 영국에 있었다. 그리고 부총리내정 후 긴급 귀국연락을 받고 모든 일정을 취소한 채 단숨에 날아왔다. IMF총회 불참은 물론 한국대표연설도 한은총재에게 넘겼고 각국 금융계거물들과의 면담약속도 모두 취소해야 했으며 WTO사무총장 당선지원을 위해 예정됐던 특사방문도 취소했다.
현지에서 외국금융계인사와 한국대표단, 보도진은 홍부총리의 돌연한 「잠적」에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놀러나간 해외여행도 아니고 가장 비중있는 국제회의에 국가대표로 참석한 일국의 각료가 모든 약속을 취소한 채 사라졌으니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개각발표 후에도 외국사람들은 『한국에선 부총리지명이 국제적 약속도 못지킬 만큼 촌각을 다투는 일인가』라고 반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회의야 불참할 수도 있고 못 만난 해외인사들도 다음에 보면 된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은 결코 회복하기 어려운 신뢰의 추락이다. 90년 ADB(아시아개발은행) 총회에서 정영의 당시 재무부장관이 국내사정으로 일정을 채우지 못한 채 귀국했던 것을 기억해보면 사실 「약속위반」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닌 셈이다. 우리와 협상을 벌이는 외국관리들은 『한국은 교섭파트너가 왜 그렇게 자주 바뀌나』라며 불평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야 개각만큼 중요한 일이 없겠지만 외국사람들이야 이런 특수사정을 알 리가 없다. 국제적 신뢰보다도 늘 국내문제를 신경써야 하는 현실이 바로 말 뿐인 우리나라 국제화의 실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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