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삶·생명의 문제 탐구 이즈음의 소설계는 사이비 문학의 전성기다. 신문광고를 보고 있으면 거의 하루 걸러 문학의 대작이 탄생한다. 상업자본이 만들어 낸 그 사이비 문학들은 독자의 마음을 바라보지 않고 그 주머니만 노린다. 이러한 현상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근자에는 문학에 진짜가 따로 없고 진짜와 사이비를 구별하는 일조차 마땅찮아하는 논리도 버젓이 행세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대중소설도 이제 어깨를 펴고 「문학」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예술의 혼이니 문학정신이니를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문학주의」가 된다. 바야흐로 사이비가 번성할 수 있는 토양이 어느 때보다 비옥해진 시기에 돌입해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대중소설을 쓰겠다고 나선 초심자들이 시장에 승부를 걸고 나오는 것은 당연하고, 최근의 몇몇 성공사례가 너도나도 이 대열에 끼어들게 만든다. 그러나 누구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나 「영원한 제국」과 같은 행운을 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소설쓰기는 한탕주의가 되고, 성공하지 못한 시도 후에는 허탈감밖에 남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를 던져 삶을 창조해나가는 진정한 소설의 길에는 이러한 허탈은 없다. 비록 실패할지라도 그 과정 속에 이미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주로 상업자본의 요구에 발맞추어 채 익지 않은 작가들조차 장편소설 쓰기에 골몰하는 시기에, 예술혼을 화두삼아 생명의 문제를 진지하게 탐구한 중편을 만나는 일은 즐겁다. 박명희의 「어둠의 소리」(「작가세계」가을호)는 거짓된 세상에서 진정한 삶을 찾고자 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화가로서 성공했지만 상업주의의 현실 앞에 좌절하고, 더구나 사기결혼에 속아넘어갔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그림은 그려지지 않고 뱃속에 아이는 자라고 있다. 이처럼 삶의 커다란 위기에 처한 여자를 묘사함에 있어 작가는 끝내 진지함을 잃지 않는다. 기구한 운명극이나 통속극으로 떨어지기 쉬운 이 주제가 이 소설에서는 「진정으로 살아있는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고전적인 물음과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여자는 거짓 결혼을 청산하면서도 잉태된 새 생명을 없앨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대로의 삶을 긍정한다. 사랑없는 부모 사이에서 불행하게 태어났던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그 순간이 바로 새로운 삶의 창조로 이어지게 된다. 「어둠에서 빛과 생명이 나온다」는 주제가 다소 진부하고 몇몇 무리한 구성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와 더불어 「어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가벼움이 판치는 소설계를 위해서도 유익한 일이다.<문학평론가·덕성여대교수>문학평론가·덕성여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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