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참여 늘어나자 방송·비디오도 제작 열기 시의 시대가 다시 꽃피는 것일까. 소설에 밀려 대중으로부터 멀어졌던 시가 새로운 모습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미국 시단의 새 조류―시낭송회의 물결이 점차 대중속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 시의 변모」라 할 수 있는 이 현상은 벽장 속 시인·서가 위 시인이 공공의 시인·거리의 시인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뜻한다. 시 작업 자체에만 의미를 두던 시인들이나 시집으로 독자들과 만나던 직업시인 모두가 이제는 대중 속에서 시를 노래한다.
맨해튼의 예술촌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누요리칸 시인 카페에서는 매주 2차례 시 낭송 경연대회가 열린다. 수요일 밤에는 아마추어 시인들이, 금요일 밤에는 초청 시인들이 관객과 만난다. 50평 남짓한 공간에 마련된 1백여개의 좌석은 언제나 만원이다. 미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청중들은 좌석 사이의 공간을 비집고 앉거나 뒤켠에 서서 시에 젖는다.
○직장인·학생들 주류
이 곳의 매니저 키스 로치씨는 『5명의 채점원이 운동경기의 심판처럼 시인의 낭송솜씨에 점수를 매긴다 』며 『단어와 제스처, 이음과 끊음, 목소리와 감정을 적절히 배합하는 참가자가 높은 점수를 얻는다』고 귀띔했다.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시골 소읍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나 시 낭송회 공고를 만날 수 있다』고 로치씨는 덧붙였다.
미국 시의 이러한 새 조류는 1950년대의 비트 세대 이후 오랜만에 맞이하는 시와 시인의 개화인 셈이다. 그러나 현대의 물질문명을 비판하면서 보헤미안적 자유를 표방했던 비트 세대의 시 낭송과는 무대와 참가자들이 다른 것이 특징이다. 담배연기 자욱한 카페가 비트세대 시낭송의 무대였다면 지금은 도서관이나 서점이 주 무대다. 카페도 있지만 누요리칸처럼 밝고 정갈하다. 모이는 사람도 기성문화를 거부하는 일부 사람들이 아니라 현실을 껴안고 사는 성실한 생활인들이다. 교사 샐러리맨 학생들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낭송회에는 독자를 직접 만나기 위해 오는 시인도 있지만 그저 자신의 시가 낭독되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오는 시인도 있다. 개중에는 남들에게 「발견되고」싶어서 낭송회만 골라 다니는 시인도 있다.
최근 뉴저지주 워털루 빌리지에서 개최된 시 축제에는 폭우를 무릅쓰고 5백여명의 시 애호가가 몰려들어 대중의 시에 대한 열정을 가늠케 하기도 했다.
낭송회는 일과성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음악전문 TV 채널인 MTV가 만든 시낭송 비디오들은 시청률과 판매 모두 꾸준하다. 포이트리 캘린더라는 잡지는 뉴욕일원에서만 1백50개의 시 낭송 장소를 광고하고 있다. FM 라디오방송국인 WNYC와 뉴욕의 언터버그 포이트리 센터는 내년 1월부터 전국적으로 13주 동안 방송될 시낭송 시리즈물 제작을 계획하고 있다.
○낭독시 비판소리도
비판의 소리도 있다. 정통 시인들은 낭독 시가 문학과 음악, 오락과 예술의 경계를 무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비평가들은 시를 위한 시가 아닌, 낭독을 위한 시 제작이 갖는 위험성을 경고한다. 심지어 랩 음악과 음악 비디오의 악영향이 시에까지 미쳤다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어쨌거나 시가 자신만의 고고한 제단에서 내려와 대중에 보다 가까이 다가오는 것만큼은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냐고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말한다.【뉴욕=홍희곤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