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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남편의 유언(장명수칼럼: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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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남편의 유언(장명수칼럼:1728)

입력
1994.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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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상을 하며 어렵게 살아온 72세의 할머니가 전재산 3억원을 창원대에 장학금으로 내놓았다는 이야기가 각 신문에 실렸다. 그 미담 기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남편의 유언에 따랐을뿐』이라는 할머니의 겸손한 설명이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경북 구미시에 사는 강림련할머니는 17살때 농사를 짓는 성인학씨와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낳고 30여년간 재미있게 살았으나, 그가 48살 되던 해 남편은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고, 3년후엔 아들이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며느리마저 개가한후 그는 행상을 하며 젖먹이 손자를 키워 전문대학에 진학시켰고, 돈을 모아 집과 농토도 샀다.

 남편은 5년전에야 집으로 돌아왔는데, 1년을 함께 산후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아내에게 3천만원을 주면서 장학금으로 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첩을 얻어 20여년동안 나가 살던 남편, 홀몸으로 어린 손자를 데리고 온갖 고생을 다 할때 돌봐 주지도 않던 남편이 세상 떠나기 1년전에 돌아와 남긴 유언을 강림련할머니는 정성을 다해 받들었다.

 그는 남편이 남긴 3천만원에 자기가 모은 재산을 합하여 3억원을 만들었다. 집도 팔고 논도 팔았다. 그가 창원대에 장학금을 기증하기로 한 것은 남편이 창원의 공원묘지에 묻혀있기 때문이었다.

 강림련할머니의 이야기는 그들 세대가 간직했던 조강지처의 미덕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전생애를 통해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을 차례로 받들며 살아갈뿐 자신의 생이 따로 없었던 여인들의 한이 그 미덕의 다른 얼굴이다. 그 미덕은 다음 세대에 물려지지 않고, 그들 세대와 함께 무덤으로 갈것이다.

 그러나 강림련할머니가 보여준 넉넉한 처신은 인간관계의 완성이라는 면에서 볼때 은은하게 빛난다. 그는 허물이 많았던 남편의 생에서 마지막 좋은 뜻만이 살아 남도록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보탰다. 그는 지난 세월을 파헤쳐 원망하는 대신 연민으로 덮고 있다. 이땅의 어떤 남자가 그 여자처럼 넉넉하게 아내의 허물많은 생을 덮어줄 수 있을 것인가.

 창원대는 그들 부부의 이름에서 한자씩을 따서 장학기금의 이름을 「학련장학재단」으로 할 것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남편의 외도와 가출, 외아들의 사망, 며느리의 개가로 홀로 남은 한 여인이 어린 손자를 안고 굳세게 일어섰던 불굴의 정신이 그 장학금에 담겨 있다. 영양실조와 과로로 시장에서 쓰러지며 흘렸던 눈물도 어려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장학금에는 한을 원으로 품지 않았던 이 나라 여성들의 깊은 마음이 있다. 왜곡된 남성문화의 산물이라고 그 마음을 비웃지 말아야 한다. 이기적인 오늘의 부부관계에서 남편도 아내도 그 깊은 마음에 자신을 비춰볼 필요가 있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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