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 가장 많이 찾는 것 중의 하나는 전자제품이다. 제품의 질도 질이지만 가격이 국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싸기 때문이다. 기자도 최근 손잡이가 달린 자그마한 오디오를 하나 장만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회사의 제품이었는데 집에 와서 보니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았다. 며칠 뒤 물건을 바꾸러 가면서 속으로 단단히 별렀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삿대질이라도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머쓱해지고 말았다. 그 곳의 환불·교환담당 직원은 물건이 든 상자를 보자마자 딱 한마디 했다. 『리펀드 오어 체인지(REFUND OR CHANGE)?』 환불이건 교환이건 원하는대로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화랑가로 이름높은 맨해튼의 소호(SOHO) 근처에 「안젤리카」라는 극장이 있다. 할리우드의 거장 존 휴스턴의 딸(안젤리카)이 운영한다는 이 극장은 시류에 상관없이 수준높은 외국영화를 엄선해 상영한다. 이 극장에서 「사고」가 났다. 배기 시스템에 이상이 생기는 바람에 상영관이 연기로 가득찼다.
직원들이 황급히 달려와 상영관내를 점검하더니 관객들을 모두 밖으로 나오게 했다. 투덜거리는 것도 잠시, 매니저가 명함처럼 생긴 무료 입장권에 자신의 사인을 하더니 일일이 사과의 말과 함께 관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휴일을 제외하곤 어느 때라도 와서 아무 영화라도 볼 수 있는 입장권이었다. 관객들이 낸 입장료는 물론 도로 돌려주었다.
유사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얼마전 맨해튼에 사는 한 고등학교 동창은 이미 지불한 신용카드 사용 금액에 대한 청구서가 날아와 이의를 제기했다. 확인 즉시 지불처리 됐음은 물론 같은 금액이 그 친구의 계좌에 입금됐다. 예외적인 호의가 아니라 당연히 주게 돼 있는 보상금이었다. 이 모두는 미국 사회의 소비자 우선주의가 공허한 구호가 아님을 보여주는 예들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하고 생각하게 된다.【뉴욕=홍희곤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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