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북구청 세무부정사건과 최근 이에 연이어 터진 공직사회의 비리는 많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함께 좌절을 안겨 주었다. 이제까지 여러 유형의 세무관련 부정사건이 있어 왔지만 이번 사건만큼 범행수법이 대담하고 대규모인데다 구조적으로 저질러진 사례는 일찍이 없었던 것같다. 더구나 부정부패의 추방을 국정지표로 내세우고 출범초기 강력한 사정과 개혁을 추진한 문민정부하에서도 버젓이 대규모의 부정이 계속되었다는 점 때문에 이 사건이 주는 충격의 강도가 한층 큰 것으로 느껴진다. 또 한편으로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부정부패를 뿌리뽑겠다며 국민에게 공약한 문민정부의 개혁은 과거정권에서 보듯이 한낱 공념불로 끝나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과 좌절을 느끼게 한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김영삼대통령이 집권초기 당초 예상을 뛰어 넘는 강도높은 사정과 개혁을 실천하는 것을 지켜보고 지역과 계층을 초월하여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김대통령은 우리 헌정사상 「개혁을 가장 잘 하는 대통령」으로 평가되었고 개혁은 문민정부의 소중한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개의 국민들은 위기상황에까지 이른 우리 공직사회의 부정부패가 이제는 근절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마저 갖게 되었다. 실제로 문민정부 출범초기 의욕적으로 전개한 각종 권력형 부정과 비리에 대한 성역없는 척결을 보면서 우리 공직사회도 멀지 않아 선진국처럼 깨끗하고 청렴한 기풍이 확립되리라 점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대는 작년말을 고비로 서서히 사라지면서 문민정부도 별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로 변하고 말았다. 세계적 경기침체의 영향을 받아 활력을 잃은 우리 경제를 회생시켜야 한다는 논리에 밀려 사정과 개혁은 어느덧 뒤로 밀리는 것같더니, 우루과이라운드의 타결로 국제경쟁력의 강화라는 과제가 제기되면서 사정과 개혁은 뒷전으로 물러앉고 말았다. 이런 현상을 보고 문민정부의 개혁이 성공하기를 염원한 많은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억누를 수 없게 됐다. 그 이유는 문민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부정부패추방이 열매를 거두지 못하면 우리는 선진화에 다가가지 못함은 물론 국제화시대에 경쟁국에 뒤처질 것이 뻔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와 같이 심각한 부패구조를 안고서는 도저히 선진화의 문턱을 올라갈 수 없으며 국제경쟁력의 강화도 이룰 수가 없음이 너무나 명백하다. 부정부패는 경제성장의 잠재력을 잠식하고 국민의 건전한 가치관을 좀먹는 해악적 요인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부정부패의 추방은 국가경쟁력의 강화를 위하여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긴요한 과제라고 볼 것이며 이 과제가 경쟁력 강화에 상충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부정을 몰아내고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개선하는 것이야말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지름길이라고 본다.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아시아신흥공업국 가운데 싱가포르나 홍콩등이 부정부패를 성공적으로 추방하여 이제는 이들 나라가 국제경쟁력의 평가에서 우리 나라를 훨씬 앞질러 선두 그룹에 끼인 사실은 바로 위와 같은 결론을 실증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문민정부는 경제회생과 국제경쟁력강화에 개혁이 하나의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이런 상황인식은 문민정부 출범초기 각급 사정기관이 부정척결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의욕을 보이던 모습이 금년 들어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게 된데서 비롯된다. 실제로 정부는 93년에는 개혁을 국정의 중점목표로 설정하였으나 94년에는 국제경쟁력 강화를 그 목표로 삼았던 것이 사실이다.
국정의 중점목표를 무엇으로 정하든 부정부패의 척결은 한시도 늦추어서는 안되는 장기적 과제임을 깨달아야 한다. 김대통령 자신이 어느 누구보다도 개혁에 대한 강한 신념과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 주변에서 부정부패가 다시 활개치고 있는 현실은 어디엔가 문제가 있는 것이라는 점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문제점은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굳이 한 가지 들어보면 먼저 개혁에 관한 철학적 사고가 정립되어 있지 않은 것같다. 개혁이란 부정부패에 대한 척결을 의미하는 사정과 그릇된 제도와 관행을 개선하는 제도개혁, 그리고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바로잡는 의식개혁등 3박자가 함께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특히 부정부패의 추방은 결코 일시적 단기적으로 해결되는 과제가 아니고 10년 이상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비로소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민정부는 출범초기의 사정으로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가볍게 생각하는 데서 큰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부패구조는 수십년간 관행적으로 굳어져 온 관계로 매우 단단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런 부패구조는 인체의 고질적 만성병과 같으므로 급성질환과 달리 장기간에 걸쳐 꾸준한 치료와 대증요법을 시행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치유의 결과를 기대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문민정부는 우리의 부패구조를 척결함에 있어 일시적 수술만으로 그 질병이 치유되는 것으로 잘못 안 것같다. 그러다 보니 집권초기의 서슬퍼런 사정의 칼이 환부의 일부만 도려낸 채 덮어버림으로써 만성적 질환은 치유되지 않은 상태가 되고 말았다. 오히려 섣부른 일시적 치료는 자칫하면 만성적 질환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모처럼 문민정부가 시도한 부정부패추방이 이런 양상이 되고 마는 것은 아닌지 적이 걱정된다.<대한변협회장>대한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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